2017년 1월 29일 연중 4 주일

제 1 독서 스바니야 2,3;3,12-13.

제 2 독서 코린토 1서 1,26-31.

복 음 마태오 5,12.


      어제 28일이 음력 설날이었습니다. 한국에 있다면 아마도 집안어른들에게 세배를 드리고, 그분들의 덕담을 들었을 것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아라" "건강하고 기쁘게 지내라"등의 말씀 들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세배를 드릴 수도 없고, 그분들의 덕담을 들을 수도 없습니다. 대신 우리는 오늘 복음가운데 예수님으로부터 덕담을 듣습니다. "행복하여라"는 말 씀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중 하나가 행복입니다. 어느 누구도 불행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들 각자 나름의 행복을 찾아 누리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열심히 노력 하는 사람조차도 자기의 행복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경우는 드뭅니다. 우리는 행복에 대한 기대를 품고 살아갑니다. 1등이 되거나, 성공을 하거나, 좋은 직장에 다니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면 행복하게 될거라고 기대합니다. 행복하기 위한 특별한 조건이 있고, 그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는한 행복하지 않은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든 행 복의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우리 삶에서 행복의 조건은 시간마다, 상황마다, 그때그때 바뀌기 때문입니다. 배가 고플때 맛있는 음식이 눈앞에 있으면 더할나위 없 이 행복하겠지만, 다이어트를 결심한 사람앞에 놓여 있는 음식은 아마 갈등의 원천이자 괴로 움일 것입니다. 어떤 학생이 1등이 되면 행복하고 만족하게 될까요? 아마 그 이후에는 1등을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려운 숙제로 남지 않을까요?

      우리는 어떤 문제가 해결되면 행복하게 될거라 기대합니다. 학생들은 시험이 끝난 후를 기 대하고, 직장인은 퇴근시간이나 은퇴이후를 상상하며 즐거워합니다. 저의 경우는 이번주에 있 을 부담스러운 피정과 강의가 끝나면 지금보다 훨씬 좋을거라 기대합니다. 하지만 인생의 시험은 한번으로 끝나는 법이 없습니다. 또 직장인이 그 일에서 행복할 수 없다면 하루의 절반 이상을 낭비하는것이 됩니다. 어린아이와 어른 가운데서 누가 행복할까요? 어린아이가 어른보다 훨씬 자주 웃는 것을 보면 아이가 더 많이 행복을 느끼는듯 합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아 이에게는 문제가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무시해서 하는 말은 아닙니다. 어른들은 아이들과는 달리 모든것이 문제 투성이이고, 걱정거리입니다. 반면에 아이는 걱정도 두려움도 별로 없지요. 아이와 어른 가운데서 어느편이 세상을 더 정확하게 바라보고 있는지는 하느님 만 아실것입니다. 삶에서 맞닥뜨려야 할 문제는 항상 있게 마련이고, 이 문제가 끝나면 곧 바로 다른 문제가 나타나거나, 여러문제들이 한꺼번에 파도처럼 몰려드는 경우를 체험합니다. 삶에서 맞닥드려야 할 문제는 항상 있게 마련이고, 우리는 그 모든 문제가 지난 다음이 아닌 바로 그 문제들 가운데서 행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한편 우리는 지금 당장의 필요와 욕구가 채워지면 행복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살아가면서 물질적인 기반은 꼭 필요합니다. 인간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물질마저 부족한 상태에서는 행복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필요가 보장되고 난 후에는 더 많이 소유한 다고 해서 더 크게 행복한 것만은 아닙니다. 또 만족이 항상 나의 외부에서만 오는 것도 아닙니다. 주위에 아는 사람이 많아도 우리는 친구하나 없이 외로울 수 있고, 옷장에 옷이 가득해도 입을 옷 하나 변변한게 없다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또 크고 넓은 자기 집안에서 조차 공허감과 불행을 느낄수 있습니다. 만족은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느냐에 달린것이 아니라, 내 주위의 상황과 조건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내 생각에 풍요로운 사람은 많은 돈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지금 누리는 것에 만족하고 감사할 수 있는 사람입 니다. 만족은 내 지갑을 얼마나 채우느냐가 아니라 내 욕심을 얼마나 덜어내고 적당한 때에 멈추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만족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으로 부터 나옵니다.
사실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다른 조건들도 필요합니다. 건강도 필요하고, 도전할만한 과제나 성취감도, 배움과 깨달음도, 원만하고 균형잡힌 대인관계도 필요합니다. '몰입(Flow)'을 연구한 미하이 칙센트 미하이라는 심리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행복을 직접적으로 쫓을때 얻 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순간순간에 충분히 몰입하고 있을때 누릴 수 있는 것" 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매순간 내 행동과 말에 온전히 몰입할 수있고, 그 체험을 통해 성장 하고 온전한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친구와 나누는 소박한 식사에도 온전히 마음을 담아 함께 한다면 생애 최고의 식사가 될 수 있습니다. 따뜻한 햇살을 받으면 산책하는 그 한걸음 에 감사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순간의 힘으로 하루의 고달픔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행복하여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 행복의 조건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릅니다. 부자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 기뻐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슬 퍼하는 사람들, 편안한 사람이 아니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받는 사람들이 행복하다 하십니다. 이 말씀이 정말일까요? 우리가 기대하고 생각하는바와 많이 다릅니다. 예수님의 산상설교를 " 진복팔단"이라고 부릅니다. 행복선언이 8번 반복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진복, 진짜 행복 이 있다는 것은 가짜 행복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흔히 가짜는 진짜보다 더 진짜 처럼 여겨집니다. '진복'이라는 단어가 가리키는 뜻은 사람들이 쫓는 가짜 행복이 아니라는 것 입니다. 목이 타서 마셔봤자 더 갈증만 나는 바닷물 같은 가짜 행복 아닌, 모든 메마름을 해 소하는 진짜 행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참 행복의 조건이 하느님 이십니다. 마음이 가난한 이에게 하늘나라를 줄 분도, 슬퍼하는 이에게 영원한 위로를 전해줄 분도, 의로움에 주 리고 목마른이를 흡족하게 해 줄 분도 하느님 이십니다.

      진실한 행복은 외적인 기준에 – 자동차의 배기량, 집의 넓이, 회사에서 받는 연봉, 자녀들의 학교 등수 – 있지않고 내적인 태도에 달려있음을 말씀하십니다. 온유하고, 자비롭고, 마음을 깨끗이 하고, 세상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고 슬퍼하는 것이 참 행복의 나아가는 길입니다. 행복 하기 위해서 내 주위 환경을 보기전에,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것이 먼저입니다. 예수님의 다른 행복의 조건은 "다른 사람과 더불어" 입니다. 혼자만의 행복이라고 하면 아마 행복의 조건이 바뀌었을 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아닌 욕심 많은 사람이 행복하다고 했을 것입니다. 슬퍼하는 사람이 아닌 자기 혼자만 기뻐하는, 온유한 사람이 아닌 뻔뻔하고 낯두꺼운,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아닌 내 이익만 찾고 다른것에는 무관심한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과 고립되어 나 혼자만 행복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 비통과 울음이 가득한데 나 혼자만의 웃음이 행복일 수 없습니다. 세상에 불의가 가득한데 거기에 등돌리고 나 혼자만 편안한 삶이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세상과 더불어 함께 비로소 참 행복할 수 있습니다. 아마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참 행복도 그러할 것입니다. 우리가 자비와 온유하고 , 깨끗한 마음을 지키고 다른이와 더불어 의롭고 평화를 누리는 참 행복의 길 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