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5일 연중 5주일

제 1 독서 이사야 58,7-10.
제 2 독서 코린토 2,1-5.

복 음 마태 5,13-16.

      지난 주 아틀란타에서 두개의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하나는 3박4일 동안 이냐시오 피정센타에서 있었던 성령봉사자 프로그램이었고, 다른 하나는 도라빌과 둘루스에 있는 한인성당의 노인분들을 위한 하루 피정이었습니다. 시니어(Senior)피정이라고 해서 문득 시니어의 기준이 궁금했습니다. 그 성당에서 노인의 기준이 어떤지를 물어봤더니 참 명쾌한 답변을 들을 수있었습니다. 맥도날드에서 파는 시니어 커피(Senior Coffee)를 사서 마실 수 있는 사람이 시니어라는 답이었습니다. 이렇듯 다른사람들을 만나면 그 분들로 부터 얻을 수 있는 새로운 관점과 생각들로 새세상이 열리는 느낌입니다.

     강의는 참가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나의 이야기를 주입하고 강요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참가자들도 나름의 수단으로 – 표정과 자세, 하품과 눈빛등 – 말하는 사람에게 의견과 감정을 전달합니다. 그 표현이 말보다 더 직접적이고 강력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한 만남과 대화가 무디어진 저의 삶을 돌아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실 가장 편한 곳은 집입니다. 가장 부담없는 사람은 가족 친구와 같이, 내게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나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환경에 갇혀있다보면 우리의 생각은 편안함에 갇힌채 낡아져가고, 어두워져 갈 것입니다. 모든 새로운것은 낯설은 것입니다. 그 낯설음을 피한다면 우리는 호기심도 잃고, 새로운 시선과 배움의 기회를 놓치게 될 것입니다. 한국에 있을때 1년에 한번이상 꼭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몸담고 있는 교회라는 영역 바깥으로 나가서 교육생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었습니다. 사제는 교회에서 거의 항상 말하고 가르치는 역할에 치우쳐 있습니다. 또 사제의 위치가 신자분들보다 더 높을뿐 아니라, 신자분들의 관심과 사랑가운데 살아갑니다. 어떠한 도전이나 위기도 없이, 교회안에서 자신의 위치와 책임이 세상의 전부인줄 알고 10년 20년을 살게 되면, 그의 인격과 품성이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자기의 일과 맡은 역할이 세상의 전부인것 처럼 성실하고 열심히 살아갑니다. 하지만 가장 위험한 부류가 책 한권만 읽은 사람이라고 했던가요? 자기것만 알고 남의 것은 모르고, 자기 고집만 있고 남의 심정은 모르는 사람이 그저 결심한다고 해서 마음 넓은 사람, 자비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아는 것은 많은데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줄 모르고, 지위는 높은데 함께하는 사람을 배려하지 못한다면 그 지식과 지위는 그 사회의 축복이 아닌 저주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오만과 독선의 위험으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기의 울타리 바깥을 넘어가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의 영역은 정체성을 드러내고 자신을 보호하는 울타리 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을 가두는 감옥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산상설교에 바로 이어서 나오는 대목입니다. "빛과 소금"에 관한 내용입니다. 어떤 분야를 시작할때 제일 먼저 익혀야 하는 것 중에 하나가 그곳의 '언어'일 것입니다. 수학이나 역사와 같은 학문이든, 군대나 직장과 같은 공동체이든 모든 분야에는 각기 고유한 언어가 있습니다. 음악에는 악보가 있고, 수학에는 숫자가 있습니다. 또 사용하는 단어는 같다고 하더라도 다른 의미를 부여해서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 신앙에도 나름의 언어가 있습니다. 그 언어를 통해서 공동체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쉽게 소통할 수 있습니다. 또 그 언어를 습득하면서 우리의 마음과 태도를 다듬어 갈 수 있습니다. "빛과 소금"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특별한 언어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흔히 예수님의 이 말씀을 빛과 소금이 "되어라"는 의미로 알아듣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슴을 문자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이미 빛과 소금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빛과 소금으로써 우리가 해야할 일은 우리의 짠맛을 잃지 않는것, 우리의 빛과 같은 착한 행실을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Desmond T. Doss(1919-2006)라는 미국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 신자이자 양심적 집총거부자 였습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에 육군에 자원입대 했지만살인을 금지한 계명과 안식일을 지키하는 계명에 충실하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총을 들기를 거부하고 의무병과에 자원하게 됩니다. 그는 육군 77사단 소속으로 오키나와 상륙작전의 의무병으로 참전하게 됩니다. 그가 소속된 1대대가 적의 매복공격을 받아 100여명이 쓰러지고, 55명만이 겨우 상황을 추스리고 후퇴하게 됩니다. 이때 유일한 의무병인 도스는 후퇴하지 않고, 교전지역에 남아 쓰러져 있는 동료들을 일일이 확인합니다. 그리고 생존자와 부상자들을 혼자아군지역으로 나르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해서 75명의 생명을 구하고, 그 와중에 자신도 일본군이 던지 수류탄 파편에 맞아 부상을 입게 됩니다. 그의 영웅적인 희생과 신념을 그린 이야기가 2016년에 영화로 만들어 집니다. 핵소고지(Hacksaw Ridge)라는 영화입니다.

     십게명을 자신의 신념으로 받아들이고, 그 신념을 타협하지 않고 지켜나간 그의 모습을 아마도 짠맛을 잃지 않는 소금에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군인으로서 의무를 다하여 총도 가지지 않은채 전장을 누비며 동료를 구한 그 노력은 빛과 같은 착한 행실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현대인의 삶을 성찰해 보면 지켜야할 신념없이, 이루어야 할 가치없이 살아가는 듯 합니다. 유일한 가치가 있다면 아마도 나의 이익, 나의 안락함 정도 인듯 합니다. 우리는 이익과 편안함에 따라 너무 자주 흔들리고, 어느때 나 자신마저도 잃어버리며 살아갑니다. 또 삶의 무거운 짐과 상처에 매여서 다른이들을 돌아볼 여유없이 살아갑니다.

     오늘 1 독서에서는 우리가 빛으로 살아갈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 이렇게 소개합니다. "네가 네 가운데 멍에와 삿대질과 나쁜말을 치워버린다면, 굶주린 이에게 네 양식을 내어주고, 고생하는 이의 넋을 흡족하게 해 준다면, 네 빛이 어둠속에서 솟아 오르고, 암흑이 너에게는 대낮처럼 되리라." 마하트마 간디가 꼽은 7가지 사회악에는 '원칙없는 정치' '노동없는 부' '인격없는 교육'과 함께 '희생없는 종교'가 들어갑니다. 자기만 온전하게 해 달라고, 내 삶만 평화롭게 해 달라는 신앙은 그 세상의 소금이나 빛이 아니라 어둠을 드리우는 악이 됩니다. 흔히 그리스도인을 자처하는 이들이 많아도, 세상이 나아지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주님의 은총과 복을 바랄뿐 예수님처럼 자신을 희생하려는 용기가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신을 나누고 내어주는 희생없는 신앙은 하느님과 상관없는 믿음이고,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도 없는 무기력한 장식품에 불과합니다. 소금은 자기를 녹이는 고통이, 촛불은 자기를 태우는 아픔이 있습니다. 그 고통과 아픔으로 썩지 않고, 어둠에 물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람을 살리고, 이 세상을 구하는 거창한 희생일 필요는 없습니다. 이웃에게 웃는 낯으로 상냥한 인사를건네고, 친절을 베풀고, 나의 시간과 재능의 일부라도 다른이들과 나눈다면 아마도 그것이 우리의 빛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한주간 동안 작은 희생으로 주위를 비추는 별빛이 되고, 사랑과 친절을 잃지 않는 소금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