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2일    연중 6 주일


제  1 독서     집회서 15,15-20.

제  2 독서     코린토 1서 2,6-10.

복      음     마태 5,17-37.


톨스토이의 단편선에 나오는 " 바보 이반"  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렸을때 한번 정도 읽었거나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간단하게 그 이야기의 줄거리를 소개합니다. 어느 나라에 3남 1녀를 둔 농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반은 그중의 막내아들로 언어장애인인 여동생과 함께 부모의 농사를 지으며 살았습니다. 어느날 악마는 가족의 화목과 형제간의 우애를 망치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악마는 큰 형 시몬에게 자만을 불어넣습니다. 그래서 시몬은 세상을 정복하러 나섰다가 전쟁에서 패하고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둘째 형 타라스에게는 욕심을 불어 넣습니다. 그 결과 타라스는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욕심내다가 큰 빚을 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반에게는 악마의 여러 술수가 통하지 않습니다. 이반을 배탈 나게도 하고 밭을 돌처럼 딱딱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이반은 아픈 배를 붙잡고 농사일을 계속합니다. 결국 악마는 능력있고 똑똑한 두 형은 유혹할 수 있었지만 이반에게는 실패합니다. 나중에 이반은 왕의 자리에 오르지만 왕의 옷을 벗어 던지고 농사를 짓습니다 .왕비도 이반을 따라 농사를 짓습니다 결국 똑똑한 사람은 모두 이반을 떠나게되고 그 나라에는 바보만 남게 됩니다 이 이야기를 읽다 보면 머리좋고 똑똑하다고 하는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살펴보게 됩니다.


  흔히 "바보 같다" 라는 표현은 칭찬이 아니라 모욕적인 의미로 쓰입니다. 머리 쓸 줄 모르고 자기 이익도 못 챙기고 주어진 일에 지나치게 열심인 사람입니다 핑게대거나 둘러대는 수단도 부족해서 입바른 소리 했다가 미움당 하기도 하고, 눈치도 없고 주변머리도 없어서 가끔 주위 사람마저도 곤경에 빠뜨리는 사람입니다. 반면 똑똑한 사람은 계산도 밝고 눈치도 빨라서 매끄러운 처신으로 인기도 많습니다. 자기 이익도 챙기고 더 많은 기회를 잡는 데 능숙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러러볼 만한 지식과 지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보보다는 남들이 함부로 무시하거나 깔보지 못하는 능력 있는 사람 똑똑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합니다.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손해 보지 않고 이용당하는 억울한 일 없이 살고 싶어 합니다.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는 더 좋은 이익이나 기회가 없는지 두리번거리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종교 전통과 지혜들은 세상 안에서 머리 좋은 사람보다는 “거룩한 바보” 가 되라고 권합니다.

    

 "바보 이반" 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내가 바보가 되면 사람들은 나를 보고 웃는다 자기보다 못난 놈이라고 뽐내면서 말이다.내가 바보가 되면 마음씨 착한 친구가 모인다 불쌍한 친구를 돕기 위해서 내가 바보가 되면 약삭빠른 친구는 다 떠난다. 도움받을 가치가 없다고 내가 바보가 되면 정말 바보는 떠나고 진정한 친구만 남는다. 내가 바보가 되면 세상이 천국으로 보인다 그냥 이대로가 좋으니까..." 이 정도면 그냥 바보가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의 똑똑함을 아래로 굽어볼 수 있는 탁월한 지혜로움입니다. 세상에 머리좋다는 사람이 많아질 수록 더 귀해지는 사람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손과 발이 부지런한 사람일 것입니다. 미국의 여류 시인 엘라 휠러 윌콕스(Ella Wheeler Wilcox)은 세상의 사람들을 두 부류로 분류합니다.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나 겸손한 사람과 오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스스로 “부담을 짊어지는 사람” 과 자기가 져야할 “부담을 남에게 떠넘기는 사람” 입니다. 시인은 이렇게 묻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이상한 일은 세상에는 짐을 지우는 사람이 스무명이면 짐을 드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뿐이라는 것 당신은 어느 쪽인가? 무거운 짐을 들고 힘든 길을 가는 이의 짐을 덜어주는 사람인가? 아니면 남에게 기대어 자기 몫의 짐을 지우고 근심,걱정을 끼치는 사람인가? 부담을 남에게 떠넘기는 사람은 스스로 머리 좋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고, 부담을 떠안은 사람은 스스로 바보 같다고 여길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부담을 떠 남기는 사람은 스스로 그 공동체에서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 되는 것이고, 부담을 안은 사람은 그 수고로움을 통해서 꼭 필요한 존재가 되어 갑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에게서는 구약성서에서부터 내려오는 계명과 율법에 충실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살인하지 말아야 할 뿐 아니라 성내지도 말라 하시고, 거짓 맹세만이 아니라 맹세 자체를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명령을 듣고 자유스러움과 편안함을 느끼는 경우는 없을 것입니다. 그 계명이 내 삶을 짓누르는 듯한 부담을 느끼고 그 법을 어겼을 때 받아야 하는 벌에 두려움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 계명과 율법을 지키는 것이 좋으냐? 아니냐? 하는 것과 는 별개로 우리는 “...를 하라 하지 마라” 하는 명령에 대해 묘한 거부감을 느낍니다. 하지 말라 하는 것에 대해서는 궁금해하고 “하라” 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것을 하지 않을 핑곗거리를 찾게 됩니다. 나는 내 삶의 주인이고 싶고 다른이의 간섭으로 부터 벗어나 온전히 자유롭게 살고 싶어 합니다.   파리 68혁명의 주제가 “모든 금지된 것을 금지하라” 입니다. 전통과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법과 제도라는 수단으로 젊은 세대들의 삶을 통제하려는 권력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누리고 싶어 했던 학생들의 선언입니다. 우리도 비슷하게 통제하고 간섭하려는 힘을 마치 감옥처럼 여기며 갑갑해 합니다.

     

다른 한편 모든 규범과 법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내키는 대로 산다고 해서 자유와 해방의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까요? 자기를 가두는 감옥에서 벗어났지만 그 마음과 의지를 어디에 둘지 모르는 채 헤매고 방황하고 비틀거리는 그 영혼이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지키도록 명하신 십계명은 이집트의 노예로 살았던 이들이 하느님의 자유로운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지켜야 했던 계약 조건입니다.. 1 계명은 하느님만을 주인으로 섬기고, 하느님이 아닌것들의 노예가 되기를 거절하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주 하느님이 아닌것을 하느님처럼 여기며 그것의 노예가 됩니다. 돈과 권력의 노예가 되기도 하고 자기 소유와 탐욕을 하느님 처럼 섬기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1 계명은 오로지 하느님 안에 머무르면서 다른 것의 노예가 되기를 거절하는 해방의 선포입니다. 다른 계명들 또한 분노와 성냄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마땅히 사랑해야 할 부모 가족과 이웃을 보살피며 탐욕과 거짓에 매여 살지 말라 는 권고입니다. 이러한 삶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라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권고를 받아들여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은 어떨까요? 아마도 앞서 소개해 드린 ‘바보 이반‘과  비슷할 거라 여겨집니다. 머리 좋은 사람은 법에서 빠져나갈 구멍을 찾고 지키지 않아도 될 핑계와 이유를 궁리하고 자신의 부담을 남에게 떠넘길 방법을 만들것입니다. 그러나 거룩한 바보는 머리를 쓰기보다는 손과 발을 움직이고 자신이 받아들여야 할 부담을 피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세상의 머리 좋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하느님의 눈에는 어리석음이라고 말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자기가 이 세상에서 지혜로운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가 지혜롭게 되기 위해서는 어리석은 이가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지혜가 하느님께는 어리석음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지혜롭다는 자들을 그들의 꾀로 붙잡으신다.” ( 코린토 1서  3,18-19)


자기를 희생하여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고 자신의 죄에 대해 괴로워하고 보이지 않는 하느님 앞에서 온전한 사람으로 서 있기를 갈망하는 것은 신앙 안에서 거룩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믿지 않는 이들이 보기에는 별 이익도 없고 쓸모없는 바보 같은 모습일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똑똑함과 하느님의 지혜가 다릅니다. 우리는 어느 쪽을 선택하며 살아갈까요? 집회서의 저자가 말합니다. “그분께서 네 앞에 물과 불을 놓으셨으니 손을 뻗어 원하는 대로 선택하여라"(15,15) . 우리는 내가 원하는 대로 나의 모습을 만들어 갑니다. 우리가 매일 하느님 안에서 바른 선택을 하고,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