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2일 사순 제 2 주일
제 1 독서 창세기 12,1-4ᄀ.
제 2 독서 티모테오2서 1,8ᄂ-10.
복 음 마태오 17.1-9.
살아가면서 기억에 남는 여행이 하나 정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2008년 안식년에 떠났던 스페인 여행이 그러합니다. 프랑스에서 스페인의 산티아고, 그리고 묵시아까지 900Km를 걷는 도보여행이었습니다. 그 여행에서 느낀 것을 다른 분들과 나누기도 하고, 꼭 한번 가보시라 권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여행 가운데서 참 좋았던 것을 콕 집어서 말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사실 편안한 여행이었다기 보다는 불편하고 어려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언어문제뿐만 아니라, 걷는데 길을 잃어버려서 헤매고, 예상치 못한 날씨 때문에 일정의 절반 정도는 비와 눈을 맞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언젠가 기회가 되면 그 길을 걸어보리라는 마음이 드는 것을 보면 그 여행이 주는 의미가 컸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흔히 여행과 관광을 구분합니다. 관광은 가이드와 준비된 서비스를 받으면서 편안하게 문화와 풍경을 즐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행은 즐거움보다는 삶의 의미를 찾고, 다른 관점을 배우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에 중심을 둡니다. 여행이든 관광이든, 집을 떠나 낯선 곳을 가는 행동에는 다양한 방식과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혼자서 또는 여럿이서 갈 수 있고, 즐거움과 아름다운 풍경을 찾을 수도 있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서 새로운 관점을 배울 수도 있고, 하느님의 이끄심을 체험하기 위해 떠날 수도 있습니다.
신화나 전설을 보면 무엇인가를 찾아 떠나는 여행과 모험이 소개됩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황금 양모를 찾아 떠나는 이아손과 이르고 호의 원정대 이야기가 있고, 성배를 찾아 나서는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 이야기가 있습니다.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고향이 이타카로 돌아가기 위해 온갖 우여곡절을 겪는 호머의 오디세이 이야기가 있고, 최근에는 절대 반지를 얻고 나서 그 반지를 파괴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나는 호빗족과 그의 친구들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해명을 받고, 그것을 위해 길을 떠나고, 괴물과 싸우고, 온갖 역경을 물리치고, 소명을 완수하고 돌아오는 영웅들의 이야기입니다. 신화학자들은 그런 영웅들의 이야기가 인간이 더 큰 존재가 되기 위해 겪어야 하는 성장의 과정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평범한 존재가 영웅이 되는 과정에는 꼭 길을 떠나는 여행이 있고, 난관을 겪고 거대한 무엇과 싸우는 것이 포함됩니다. 우리는 모두 그러한 영웅의 길을 걷는, 모험의 길 위에 서 있습니다. 가장 험난하고 먼 여행은 아마도 자신의 내면을 향해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행일 것입니다. 신학자인 죠셉 켐벨은 자신의 삶을 지복(Bliss)을 따르는 삶이었다고 회고하면서 , 우리에게 " 지복(至福)을 따르라(Follow your bliss)” 고 충고합니다. 복은 우리가 하느님에게서 가장 받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사의 마지막에 그분이 주시는 복을 받고, 세상으로 파견되어 갑니다. 지복은 괴로움이 하나 없고, 모든 일이 행운만 따르고, 땀 흘려 고생할 필요가 없는 마법을 가르치는 말은 아닙니다. 손대는 일마다 잘되고, 원하는 대로 일이 술술 풀리고, 들인 노력도 없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는 요술 램프도 아닙니다. 지복은 어떤 대가를 치르고 서라도 꼭 지켜야 하는 자기 삶의 가장 소중한 것을 가리킵니다.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넘고, 이길 수 없는 괴물과 맞서 싸우면서까지도 그것을 향한 발걸음을 멈출 수 없는 가장 좋은 것입니다. 대부분은 지복을 따르기보다는 자기 이익과 감정을 따르고, 그래서 이익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고, 감정의 기복에 따라 왔다 갔다 하며 살아갑니다. 어쩌면 지복을 따르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자기 안의 그 복을 찾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오늘 1 독서에서는 하느님이 아브라함을 불러 믿음의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시는 첫 부분이 소개됩니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그리하여 너는 복이 될 것이다." 아브라함이 복이 되는 첫 번째 조건은 안전과 편안한 생활이 보장된 조건인 고향, 친족, 아버지 집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어디인지도 모르는 낯설고 불안한 여행을 떠나, 그 길 위에서 하느님께 의탁하는 법을 배우고, 복을 누리라는 부르심입니다. 그 여행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아브라함은 모릅니다. 다만 "복이 될 것"이라는 그 말씀에만 의지하면서, 멀고도 두려운 여행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 여행은 행운만 따르고, 모든 사람이 내 편이 되어주는 낭만적인 여정이 아니었습니다. 자기에게 익숙하고 친한 사람과 환경에서 벗어나는 것 자체가 이미 괴로움과 어려움의 시작입니다.
모든 신앙인은 어쩌면 아브라함이 들었던 주님의 말씀, "떠나라." 를 오늘 이 순간 듣고 실행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께 의지하며, 그분이 보여주실 어떤 곳을 향해 길을 떠난 사람입니다. 그 길을 이제껏 걸어온 길과도 다르고,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이 걷는 길과도 다릅니다. 그 길은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역설이 숨겨진 길입니다. 내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하는 성실함이 요구되는 길이고,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하는 넘기 힘든 장애물이 버티고 있는 길입니다.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신앙의 길은 나의 어렵고 힘겨운 부담을 하느님 이 나 대신 모두 해결해 주는 안락한 길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느님이 안 보이는 어두운 현실에서 그분을 찾아 헤매야 하는 모험입니다. 있어 보이는 돈과 권력 대신에 없이 보이는 분을 쫓아가는 멀고도 아득한 길입니다. 많은 사람이 가는 넓은 문이 있는 길이 아니라, 가려 하지 않는 좁은 문이 있는 길입니다. 다른 한편 이 길에는 남다른 위로와 남들이 모르는 기쁨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길 위에 서 있는 우리에게 "걱정하지 마라, 두려워하지 마라." 위로해 주십니다. 당신이 몸소 부활하심으로써 우리도 언젠가는 그러한 생명을 누릴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하십니다. 또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하시면서 우리가 하느님의 자식임을 일깨워 주십니다. 우리는 신화 속의 영웅들처럼, 매일 괴물과 같은 현실과 맞닥뜨리면서 살아갑니다. 어느 때는 그 괴물에 짓밟혀 만신창이가 되기도 하고, 어느 때는 도망치기도 하고, 어느 때는 겨우 용기를 내 그 괴물의 얼굴을 보며 맞서 싸우기도 합니다. 그 모든 과정에서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살게 하시고, 당신께로 초대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이 산 위에서 하얗고 빛나는 모습으로 변하신 사건을 소개합니다. 예수님은 빛나는 모습으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 모습을 본 베드로는 초 막 셋을 지어 그냥 산 위에 머물자고 말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다시 산 밑으로 내려오 십니다. 신앙인의 입장에서라면 세상의 온갖 번잡함과 더러움을 피해 산 위에서만 살고 싶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의 골치 아픈 소식에 대해서는 귀 막고, 성서의 위대한 예언자들의 이야기만 들고, 그들의 빛나는 모습만을 바라보면서 나 또한 그들처럼 때 묻지 않고, 어두운 그림자가 없기를 바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이는 산 위에서 세상 시름을 잊고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산 아래에서, 풍진 세상에서 하느님의 길을 찾는 사람이고, 세상의 고통과 어둠 속에서 사랑과 정의의 길을 고돼하는 사람입니다.
개인적으로 예수님께서 "나는 길"이라 하신 말씀을 좋아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향해 나아 가는 모든 길이 이미 천국입니다. 그분께서 "나는 길"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치고 넘어져도, 그 길 위에 있는 한 우리는 그분과 함께 있습니다. 우리가 그분께 나아가는 그 길을 통해서, 그분 또한 우리에게 오십니다. 우리가 매일 내 안에 계신 하느님을 찾아나 서고, 그분을 만나는 지복을 길을 성실하게 걸을 수 있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