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19일 연중 33주일
제 1 독서      잠언 31,10-13.19-20.30-31.
제 2 독서      데살1서 5,1-6.
복   음       마태 25,14-30.
2006년에 한 인터넷 게시판에서 "세계적인 천재들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그 내용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뉴턴은 강남에서 최고 잘 나가는 학원 강사가 돼 있었다. 종래의 과학이론을 뒤엎을만한 실력을 갖췄으나 이를 시기한 학계로부터 건방진 놈, 선배 를 무시하는 놈이라는 등의 소리와 함께 왕따를 당했다. 머리 좋은 그는 결국 골치 아프지 않고 돈 잘 버는 길을 택했다. 다음으로 아인슈타인을 찾았더니 중국집에서 음식배달을 하고 있었다. 오직 수학과 물리 밖에 할 줄 몰랐던 그는 영어와 내신 성적에 걸려 대학에는 발도 못 디뎌 보았다. 고졸 학력으로 취직도 안 되고 해서 생계를 위해 철가방을 들게 되었다." 이외에도 에디슨이나, 퀴리부인, 호킹 박사 등이 등장합니다. 모두 한국의 입시제도와 개인의 특성을 존중하지 않는 교육 때문에 자신들의 천재성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내용의 글이 나옵니다. 이 글은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풍자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천재성이 발휘되기 위해서는 개인의 역량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 역량을 알아보고 키워줄 사회적인 환경이 필요함을 이야기합니다.
흔히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좋아하는 것을 하라고 권합니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본인들조차도 자신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도와 체험이 필요합니다. 시도해 보지 않고 잘하고 못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으며, 노력을 기울여 보지도 않고 어떻게 재능을 빛나게 할 수 있겠습니까? 흔히 학문적인 성취나 예술 체육과 같은 돋보이는 분야에서만 재능을 이야기하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 재능 또한 다양합니다. 다른 사람과 유달리 쉽게 친해지는 사람이 있고, 신앙 안에서 영적인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이 있습니다. 어려운 사람의 처지에 공감하고 그들을 돕는데 탁월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식물을 키우거나 동물과 교감하는 능력이 뛰어난 경우도 있습니다. 어쩌면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자녀들의 이러한 재능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직업이나 경력에 도움이 되는 것만 재능이고, 나머지는 인생에 필요 없는 군더더기에 불과한 것일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유명한 달란트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주인이 종들에게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하나, 둘, 다섯 달란트를 주고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주인이 돌아와 셈을 할 때, 받은 달란트를 활용하여 더 많이 번 종들은 주인의 칭찬을 받았지만, 그것을 땅에 숨겨두고 활용하지 않은 게으른 종은 쫓겨난다는 이야기입니다. 흔히 이 달란트의 비유를 개인의 재능을 키우고 발휘하라는 의미로 해석합니다. 로마 시대에서 한 사람이 나를 수 있는 짐의 무게를 뜻했던 달란트라는 단어는 이제 영어에서 재능이나 재능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 말로 의미가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재능이 아무리 탁월하다 하더라도 그것을 키워주는 안정적인 기반이 없다면 꽃피지 못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 경우에 아까운 재능이 낭비되는 것을 개인의 게으름 탓으로만 돌릴 수 없습니다. 오늘 비유를 들으면서 우리도 그 게으른 종이 들었던 꾸지람을 들을 것 같은 걱정이 들기도 합니다. 언젠가 하느님 앞에 서게 되었을 때 "나는 너에게 좋은 재능을 주어 세상에 보냈는데 너는 왜 받은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방치하다가 아무것도 없이 내 앞에 서 있느냐?" 하는 질책을 들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비유에서 달란트가 가리키는 것은 개인의 특별한 재능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보다는 주인에게서 공짜로 받은 모든 것을 가리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우리 인생 전체입니다. 우리 인생은 달란트의 원래 의미처럼 하루하루 짊어져야 할 무거운 짐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그 안에서 은총과 재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달란트의 비유는 하늘나라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나라는 우리가 죽은 뒤에야 가는 곳이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살아있는 동안 이루어가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이 달란트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최대한 활용해서 온전하고 풍요롭게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이 풍요로움은 물질적인 것만을 뜻하는 것도 아니고, 나 혼자만 부자 되라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복음을 보면 차이는 있지만 모두가 달란트를 받습니다. 그처럼 우리 모두가 나름의 차이는 있지만 받은 것 중 하나가 "시간" 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시간은 공평하게 주어집니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더욱 풍요롭게 될 수 있고,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젊은이의 하루와 늙은이의 하루가 같고, 건강한 사람의 한 시간과 죽음을 앞둔 암환자의 한 시간이 다르지 않습니다. 시계는 그것을 보는 사람에 관계없이 하루 24시간, 한 시간에 60분, 같은 속도로 움직입니다. 현대는 늙음보다는 젊음을 찬양하고, 더 새로운 것에 열광하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늙은이들의 하루는 젊은이들의 하루보다 생산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또 아프고 나약한 사람의 시간보다 건강한 사람의 시간이 더 가치 있는 것처럼 여겨질 수 도 있습니다. 하지만 100살을 산 사람의 하루도 젊은이의 하루만큼이나 생생할 수 있습니다.
아디다스 광고 모델인 피우자 싱(Fouja Singh)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1911년에 태어나서 인도에서 살던 그는 아내와 막내아들이 세상을 떠나자 84세에 영국에 사는 큰 아들집으로 거처를 옮깁니다. 그러나 영국에서 생활은 쉽지 않았고, 그는 향수병과 외로움, 권태를 잊기 위해서 조깅을 시작합니다. 89세의 나이에 42,195Km 마라톤 풀코스는 6시간 54분 만에 완주했고, 3년 뒤 92세에는 5시간 40분으로 기록을 단축하기 까지 했습니다. 2013년 102세의 나이로 뛴 홍콩 마라톤이 그의 은퇴경기 였습니다. 또 99세의 나이에 첫 시집을 낸 일본의 할머니 시인 시바타 도요라는 분이 있습니다. 90세 때에 아들의 권유로 글을 쓰기 시작해서 2009년 첫 번째 시집 [약해지지마]를 자비로 출판했습니다. 이 시집은 나중에 150만부 이상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그분의 시 "약해지지마"는 소개해 드리자면, "있잖아/ 불행하다고 한 숨 짓지마/ 햇살과 산들바람은 한쪽편만 들지 않아/ 꿈은 평등하게 꿀 수 있는거야/ 나도 괴로운 일 많았지만 살아있어 좋았어/ 너도 약해지지마." 인생을 오래 겪어낸 분이 하실 수 있는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느낄 수 있습니다. 마라톤을 하고 시를 쓰는 것이 달란트를 불리는 유일한 방법은 아닐 것입니다. 나름의 방식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이라는 달란트를 활용하는 매일의 노력이 바로 하늘나라를 이루는 씨앗이 아닐까요?
다른 한편으로 달란트의 비유를 개인에 한정시킬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이 달란트의 비유를 공동체에 적용시켜볼 수 있습니다. 우리 공동체는 주어진 사람과 자원을 활용하여 성장하고 풍요로워지고 있는지 성찰할 수 있습니다. 공동체는 각자의 재능과 삶이 다양한 모습과 색깔로 피어나는 아름다운 정원과 같은 곳입니다. 아무리 탁월한 재능도 그 자체로 빛을 발할 수 없습니다. 말을 잘하는 재능은 그 말을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보이지 않는 재능을 통해서 꽃핍니다. 가르치는 재능은 배우기를 좋아하는 이들을 만나야 빛을 봅니다. 그림을 그리는 재능 또한 그것을 볼 줄 아는 안목을 만나면서 돋보이게 됩니다. 공동체에는 돋보이는 재능을 가진 개인도 필요하지만, 그 개인들을 조화롭게 이어주고, 다른이의 빈틈을 메워주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공동체는 돋보이는 재능이든, 돋보이게 하는 재능이든 그 모두를 필요로 하고 그러한 만남과 우애를 통해서 우리 모두가 성장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받을 달란트는 가지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으른 종은 어둠속으로 쫓겨납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실 것이라 저는 믿습니다. 자비로운 하느님이 한번 실패했다고 해서 그를 영원히 버려둘 리 없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주인의 칭찬을 받은 이들도 처음에는 꾸지람을 받고 쫓겨났던 사람이 아니었을까 상상해봅니다. 우리가 매일 주어진 달란트를 활용하는 법을 배우고, 하느님 앞에서 자랑할 수 있는 삶이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