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6일 그리스도왕 대축일
제 1 독서      에제키엘 34,11-12.15-17.제 2 독서      코린토1서 15,20-26.28.복     음      마태오 25,31-46.
삶을 크게 혼자서 해야 하는 것과 함께해야 하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대신 해 줄 수 없고, 나 혼자만 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아마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 '그 삶에 책임을 지는 것' '배우고 기도하는 것' 등이 있을 것입니다. 그 누구도 나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하느님 앞에 홀로 서서 내 삶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배우고 기도하는 진지한 내면의 작업 또한 혼자서 해야 하는 일들입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함께 해야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위로되어주고, 대화하고, 친구가 되는 과정입니다. 이것은 결코 혼자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혼자서 유능하게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세상과 단절되어 외톨이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세상이라는 곳이 우리에게 어려움과 상처를 주는 삭막한 곳이기는 하지만, 그나마 내가 사랑하고 지켜야 할 관계가 있기 때문에 견딜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체험 상 가장 멋없는 식사가 혼자 먹는 밥이고, 가장 재미없는 여행이 혼자 가는 여행입니다. 아마 그보다 더 안 좋은 경우는 싫은 사람과 함께 하는 식사와 여행일 것입니다. 그리고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순간은 좋은 하는 이들과 더불어 나누는 식사와 체험의 순간들입니다. 삶이 때로는 사람들 사이에 부대끼면서 생겨나는 갈등과 상처로 괴로워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는 사람에게서 오는 위로로 치유되는 것을 체험합니다.
우리에게는 혼자 있는 것과 함께 하는 것 사이에 균형이 필요합니다. 바오로 사도가 말씀하였듯이 아무리 대단한 능력이 있어도 – 여러 언어로 말을 하고, 예언하는 능력과 모든 지식과 산을 옳길만한 믿음이 있어도(코린 1서 13,1-2) - 사랑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더 나아가서 그 대단한 능력들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흉기가 될수 있습니다. 공부와 기도를 하는 것은 자기의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고독한 작업이지만, 그 열매가 펼쳐지는 곳은 이 세상입니다. 춘추시대 역사책인 국어(國語)에 "무감어수 감어인(無減於水 鑑於人)"이라는 글귀가 나옵니다. 거울이 귀했던 옛날, 물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아야 했던 시절의 말입니다. 자신의 모습을 물에 비추어보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비추어 보라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모두 비추어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정작 자기를 모르게 되는 경우보다는 더 나은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혼자 있게 있게 되면 정작 자신에 대해 무지하게 될 수 있습니다. 고독한 자신의 감정과 필요가 세상의 중심인듯한 착각에 빠질 수 있고, 자신의 관점과 생각이 가장 우월한 듯한 기분에 도취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과 대화 하면서 독선을 피할 수 있고, 사랑을 실천하면서 교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언젠가 맞이하게 될 사건을 소개합니다. 언젠가 예수님께서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사람들을 구분할 것이고, 그들 가운데 어떤 이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지만, 어떤 이는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람을 가르는 기준은 간단합니다. 가장 작은 사람 하나에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느냐? 아니냐? 입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판단하시는 기준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들이 사람을 식별하거나 판단할 때는 보통 '얼마나 배웠느냐?' '어떤 지위까지 올랐느냐?' '얼마나 가졌느냐?' 등으로 하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판단 기준은 '그가 얼마만큼 베풀었느냐?' 입니다. 흔히 십계명의 금지 계명을 비키고 있다면 스스로 나름 착하게 지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에 비추어보면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테일러 대학교의 총장 제이 캐스터는 만일 율법을 어기지 않는 것이 선한 것이고, 그런 선한 사람을 예수님께서 사랑하신다면 예수님이 가장 마음에 들어 할 이는 아마 자기 집에서 기르는 애완견일 거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 개는…. 누구를 해치지도 않고 순하고 얌전했다…. 누군가에게 악담도 퍼붓지 않고, 도둑질도, 살인도 저지르지 않았다."([하느님의 놀라운 은혜], 필립 얀시, (IVP)) 다시 말해 죄를 짓지 않는 것 정도는 강아지가 사람보다 훨씬 나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그보다 더 나아가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2016년 12월 17일 팔순 생일을 맞이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성 베드로 광장 주변에서 기거하는 노숙자 8명을 바티칸 호텔로 초청해서 아침 식사를 함께했습니다. 생일에 초청받은 노숙자들은 생일 선물로 해바라기 꽃다발을 준비해 교황님께 선물했고, 교황님은 식사시간 내내 노숙자 한명 한명과 대화를 나누며 팔순 아침을 보냈습니다. 교황님은 오늘 복음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셨습니다. 우리는 교황님의 이 모범에서 하느님 나라에서 살 수 있는 힌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개인의 욕구와 이익이 충족되는, 한 사람만을 위한 왕국이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는 나와 이웃, 그리고 하느님이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베풀어가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는 혼자 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혼자서 갈 수 없고, 오직 함께라 야 이루어 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 각 개인의 성숙함은 자기 혼자 얼마나 잘 살 수 있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과 이루어가는 조화와 사랑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만의 영역에 갇혀 살아갑니다. 우리는 자기 생각의 범위 바깥에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자기 세상 바깥에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잊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자꾸 커지려고 하고 높아지려고 해서, 바로 옆에 있는 작은 사람들에 관해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오늘은 전례력 상 한해의 마지막 주일인 그리스도 왕 대축일입니다. 예수님을 가리키는 '그리스도'라는 단어와 '왕'이라는 단어는 서로 어울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지배하거나, 부자가 되어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가장 작고 무기력한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그렇게 오셔서 작고 낮고 무기력하게 되는 것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전달하셨습니다. 낮은 자리가 그저 비천하기만 한 곳이 아니라, 하느님이 태어나시는 곳이라는 사실입니다. 작은 사람이 되는 것은 남보다 못한 사람이 된다는 뜻이 아니라, 당신을 닮는 사람이 된다는 뜻입니다. 나의 부족함과 나약함이 부끄럽기만 한 곳이 아니라 하느님이 머무르시는 장소가 될 수 있습니다.
세상은 부유함과 힘에 매력을 느끼고, 우리도 그것을 간절하게 바라지만, 정작 하느님은 가난하고 작게 되셔서 우리 가운데 오셨음을 기억합시다. 세상의 시선이 높은 곳을 향할 때 우리는 고개를 어둡고 낮은 곳으로 돌려 하느님을 찾아야 합니다. 세상이 큰 사람들에게 길을 물을 때 우리는 작은 이들에게 가야 할 힐을 물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작은 이들은 여전히 굶주리고 헐벗어 있고, 정의와 평화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전례력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며 우리가 그동안 잊고 있었던 것, - 마땅히 보아야 했지만 보지 않은 것, 마땅히 생각해야 했지만 하지 않은 생각, 마땅히 행동해야 했지만 하지 않은 행동이 무엇인지 살피고 그 부족함을 채우는 한 주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