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5일 주님 성탄 대축일 미사
제 1 독서      이사야 62,11-12.제 2 독서      티토 3,4-7.복     음      루카 2,15-20.
성탄을 맞이하는 감회가 각자의 처지에 따라 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산타클로스가 가져다주는 선물 때문에 설레고, 젊은이들은 휴가와 축제 분위기에 들뜨고, 어르신들은 빨리 지나가는 시간을 보며 상념에 잠기실 수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 병든 이들은 예수님이 가져다주시는 구원의 소식에 희망을 품을 수 있고, 전쟁으로 고통받는 이들은 어서 빨리 진정한 평화가 오기를 기원할 수 있습니다. 성탄은 예수님이 태어나는 날이고, 우리가 참 인간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하는 날입니다. 성탄은 사람으로 오신 하느님을 기억하는 날이고,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를 돌아보는 날입니다. 성탄은 하느님이 사람이 되심을 축하하는 날이고 우리가 사람으로 살아가는 날들에 감사하는 날입니다.
어원적으로 보았을 때 크리스마스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곳, 이 축제를 가장 뜻깊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아마도 미사에 참례하는 거로 생각합니다. 크리스마스(Christmas)라는 말은 그리스도(Christ)의 미사(mass)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크리스마스라는 단어가 가리키는 곳은 휴가지나, 쇼핑센터가 아니라 그분의 오심과 구원을 기억하는 미사입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미사에 참석한 모든 분은 가장 성탄절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확신해도 좋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심을 기념합니다. 그분은 참 인간으로 사셨고, 그 삶을 많은 이들이 본받고 싶어 합니다. 그분이 이 땅에 오셨음을 기념하며, 동시에 우리 자신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의미에 대해 성찰할 수 있습니다. 그분이 이곳에 사람으로 오셨다는 것은 이 땅과 사람들에게 하느님이 머물만한 곳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의 사람됨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필리피 2장에서는 예수님의 사람 되심을 이렇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추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2, 6-8) 우리가 예수님의 오심을 기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느님이 자신의 영광과 전능함을 버리고, 스스로 가장 작은 사람이 되신 것, 자기를 낮추어 우리와 함께 머무르신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더 높은 자리에 오르거나, 더 많은 것을 가질 때 축하하고 기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 하느님이 낮아지고, 무능하게 되신 것을 기념하는 찬송가 부릅니다. 우리는 오늘 하느님이 하느님답지 않은 모습으로 오신 것에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 모습에 비추어 우리의 사람됨을 생각합니다. 우리를 예수님과 같은 참 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요인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자신을 비우고 낮출 수 있는 자세가 아닐까요? 다른 동물과 구분되어 오직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알려진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규정하는 여러 단어가 등장했습니다. 이성적 인간(Homo Sapiens),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Homo Faber), 놀이하는 인간(Homo Ludens) 등입니다. 하지만 신앙 안에서, 특별히 성탄을 맞이하여, 예수님을 닮아서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행동은 자기를 낮추는 자세, 겸손(Homo Humilitas)이 아닐까요?
겸손은 자기를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기거나, 자신을 학대하는 태도와는 구분됩니다. 겸손은 예수님의 말씀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마태 19, 19)에 충실한 태도입니다. 다른 이를 나만큼 존중하고 사랑하는 자세입니다. 하느님이 인간이 되심으로서 보여주신 모습입니다. 만일 노인이 어린아이에게 공손할 수 있다면, 부모가 자녀에게 예의를 다할 수 있다면, 배운 사람이 더 귀 기울여 듣는다면, 지배하지 않고 섬긴다면, 뽐내거나 업신여기지 않고 존경하고 들어 높여 준다면, 비난하지 않고 더 많이 응원해준다면,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다면…. 바로 그런 세상이 예수님이 바라셨던 세상이고, 구원이 시작되는 때가 아닐까요?
자부심을 가지는 것은 좋으나 교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예수님처럼 작아지는 것을 자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에게 뽐낼 수 있는 것을 찾기보다 하느님께 자랑할 것을 마련하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탄은 하느님의 작아짐을 축하하는 자리이니, 우리 또한 하느님이 내려오신 그 소박한 자리에 어울리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