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31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제 1 독서 집회서 3,2-6.12-14.
제 2 독서 콜로새서 3,12-21.
복 음 루카 2,22-40.

오늘은 한 해의 마지막 날이고,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입니다. 우선 지난 한 해를 오직 감사함으로 마무리하면 좋겠습니다. 더 노력했다면, 더 조심했다면, 더 용서했다면, 더 사랑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시간이 지났습니다. 오늘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다른 새날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듯이 보이지만, 우리는 그 안에서 조금씩이나마 성장해 갑니다. 보통 같은 잘못과 오류가 되풀이되기 때문에 무기력과 권태를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매일 예측하기 어렵게 빠른 속도로 큰 변화가 일어난다면, 우리는 거기에서 안정을 누리거나 계획을 세우지 못할 것입니다. 사실 우리 삶은 보이지 않게 조금씩이나마 바뀌어 갑니다. 마치 아이들이 커나가는 것이 보이지 않고, 낮과 밤 시간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하듯이 우리는 조금씩 바뀌어 갑니다. 그렇게 우리는 어느새 열매 맺고 무르익어 갑니다.
믿음이 생겨나지 않고, 자기 삶이 생각만큼 바뀌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하시는 분들의 하소연을 듣습니다. 하지만 믿음과 변화는 단순히 결심만으로 열매 맺지 않습니다. 마치 연주자나 운동선수가 매일 성실한 연습과 훈련으로 기량을 키워가듯이, 우리 내면의 믿음, 소망, 사랑 또한 그것을 북돋우는 실제적인 노력을 통해서 성장합니다. 흔히 바라기만 할 뿐, 그것을 이루려는 노력은 하지 않습니다. 특히 믿음, 소망, 사랑과 같은 잘 보이지 않는 가치들에 대해서 더욱 그러합니다. 결심과 아쉬움만 있을 뿐, 구체적인 노력이 없기에 우리는 매일 그저 제자리에서 맴돌기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새해에는 구체적인 행동을 해보면 어떨까요? 신앙을 원한다면 매일 5분이라도 기도를 하고, 더 사랑하기 원한다면 매일 한가지씩이라도 선행을 하는 것입니다. 희망을 원한다면 한 줄이라도 감사 일기를 쓰면서 더 좋은 것을 찾아내는 실천으로 이어지기 바랍니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일상의 삶에 갇혀 무디어지지 않기를, 반대로 우리의 선한 결심과 마음을 실천하는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작은 실천이라도 오랫동안 충분히 길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성가정 축일 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가정이라고 부릅니까? 보통 엄마, 아빠 자녀로 이루어진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과연 지금 우리 주위에 그러한 가정공동체가 얼마나 있습니까? 직장이나 학업 등의 이유로 흩어지고, 부모들은 늙고 자녀들은 떠나가서 흔히 생각하는 가정의 모습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1년에 두세번만 가족이고, 다른 때는 그저 개인이 아닐까요? 본당 사목을 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손주가 가족을 이루기도 했고, 한 부모와 자녀가, 부모로부터 독립했지만 결혼을 포기한 젊은이들이 있었고, 어른을 돌보아야 하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또 가족이라 하더라도 너무 멀리 떨어져서, 또 다른 이유로 그 유대가 희미해진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곳 타국 땅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도 거의 모두 가족을 떠나 여기에 머물러 있고, 절반이상은 전형적인 가정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혈연관계로 맺어진 사람들을 가족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피붙이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소소한 일상을 나누기도 어렵고, 친밀한 유대를 발전시키기도 어렵습니다. 오늘 기억하는 성가정은 혈연으로만 묶인 공동체는 아니었습니다. 요셉의 입장에서 보면 아내인 마리아는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결심했던 사람이었고, 아기 예수는 친아들이 아니었습니다. 마리아의 입장에서도 아기 예수는 혼인하기 전에 얻은 불청객 같은 존재였고, 그 아들 때문에 겪어야 했던 고통은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꾸리며 행복도 어려움도 함께 나누며 살았습니다. 혈연으로 묶이지 않은 그분들의 공동체를 굳이 "성가정"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마도 혈연과는 다른 인연, 바로 하느님 아버지의 섭리 라는 인연으로 하나를 이루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비록 각자의 처지와 사연은 다르지만 그들은 함께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었고, 그 한가운데에 하느님을 모셨습니다.
우리가 인간관계와 정서를 맨 처음 체험하는 곳이 가정입니다. 우리는 가정 안에서 사랑도 체험하지만, 카인과 아벨의 경우처럼 다툼과 경쟁, 갈등도 체험합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희망과 위안을 얻지만, 그만큼의 실망과 상처를 겪습니다. 나를 가장 아프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말과 행동에 깊은 영향을 받고, 나 또한 그 이상을 줍니다. 제 생각에 혈연으로 묶인 이들도 가족이지만, 우리가 이루는 신앙 공동체도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넓은 의미의 가정 공동체 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형제자매라고 부릅니다. 가정공동체의 특징 중에 하나는 변치 않은 관계로 맺어져 있다는 점입니다. 멀리 외국에 있어도, 몇 년 동안 왕래하지 못하더라도, 실망과 상처가 있더라도 가족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하느님 아버지를 중심으로 우리 공동체도 이렇게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쁨과 행복만 있어서, 좋기만 해서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때는 불편하고, 손해보는 것 같고, 부담스럽더라도 가족이라 여기며 함께 견디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아버지" 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그분께 충실하지 못하고, 잊어버리고, 심지어 부정하더라도 여전히 그분의 자녀이고, 그분이 우리의 아버지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분이 항상 우리의 아빠, 아버지가 되어 주시듯, 우리도 서로에게 남이 아닌 믿음의 형제 자매가 되어줄 수 있기 바랍니다. 오늘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 합니다.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주는 끈입니다." 우리 가정이 나자렛 성가정을 본받아 사랑하고, 하느님의 은총 가운데 머물기 바랍니다. 또 우리 신앙공동체도 인내를 키우고, 믿음을 북돋우는 믿음의 가족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