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일: 10월 7일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로사리아축일

Beata Vergine Maria del Rosario

Our Lady of the Most Holy Rosary

Our Lady of the Ros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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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축일은 성 비오 5세 교황이 레판토 해전(1571년) 승리 기념일에 제정하였다.

그리스도교 신자 군사들은 그 때 자신들이 거둔 승리가 묵주기도를 바침으로써 받은, 천주의 거룩하신 어머니의 도움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오늘 이 축제는 하느님 아드님의 사람이 되심, 수난, 그리고 부활의 영광에 특별한 방법으로 참여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이끄심으로

그리스도의 모든 신비를 묵상하도록 우리를 격려한다. (매일미사 10월호에서)

 

역사상으로 레판토 해전은 너무나 유명한 것이다.

즉 1571년에, 이미 연전 연승을 거듭해 온 터키군은 마침내는 로마를 점령하고

가톨릭을 지상에서 말살시키려고 위풍 당당하게 대 함대를 몰고 이탈리아로 향했다.

교황 비오 5세는 제후들에게 원조를 청했으나, 당시의 정정(政情)으로서는 겨우 하나의 소 함대를 편성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적의 절반도 못되는 병력으로 적을 쳐부수기 위해 교황은 온 가톨릭 신자에게 묵주기도를 할 것을 명했다.

한편 교황도 로마에서 성직자 신자들과 뜻을 합하여 열심히 이를 실천했고, 함대에 있는 장병들도 그렇게 했던 것이다.

 

1571년 10월 7일 최초의 해전에서 크리스찬 군은 적의 함대에 포위되어 수 척의 군함은 이미 격침되었고,

다시는 싸울 희망조차 없이 절망상태에 빠지게 되었는데 그 후의 전황이 기적적으로 우세하게 되어 마침내 적의 함대를 전부 격퇴시키고 말았다.

즉 묵주 기도가 이와 같은 대승리를 가져오게 했고 온 유럽의 신앙을 구해준 것이다.

이 승보(勝報)에 접한 전 로마 시민은 기뻐했고, 방방곡곡에서 성모깨 대한 감사의 예식이 거행되었다.

그때부터 성모 호칭 기도에 "지극히 거룩한 로사리오의 모후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라는 기도문이 삽입되었고 10월 7일을 그 축일로 정하게 되었다.

 

이 신심의 전파는 1830년 이후 성모님이 발현하여 묵주 기도를 열심히 바칠 것을 권고하면서 더욱 널리 퍼졌습니다.

교회는 성모 마리아가 루르드(l858)·파티마(l9l7)·보랭(l932~l933)의 발현에서 묵주 기도를 특별히 권장하였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묵주기도 성월은 개인과 가정성화, 인류구원과 세계평화를 위하여 묵주기도를 바치는 달로,

1883년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 『Supremi Apostslatus』에 의해 10월을 묵주기도 성월로 설정되었습니다.

 

*묵주기도성월(유래,영성,칠락묵주기도):게시판1408번

*로사리오(Rosario:라틴어)란 말은 장미 꽃다발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성녀 로살리아Rosalia 축일:9월4일,1347번

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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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르나르도 아빠스의 강론에서

(Sermo de Aquaeductu: Opera omnia., Edit., Cisterc., 5[1968],282-283)

 

우리는 구원의 신비를 묵상해야 합니다.

“당신에게서 태어나실 거룩한 아기는 하느님의 아들,” 지혜의 원천, “하늘 가장 높은 데에 계신 아버지의 말씀이라 부르게 될 것입니다.”

거룩한 동정녀시여, 말씀께서는 당신을 통해서 사람이 되시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나 또한 아버지 안에 있다.”고 말씀하신 그분은

“나는 아버지께로부터 나와서 세상에 왔다.”고 하셨습니다.

 

요한의 말에 의하면 “태초에 말씀이 계셨습니다.” 즉 이미 샘물이 흐르고 있었지만 아직 자신 안에서만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말합니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즉 가까이 갈 수 없는 빛 가운데 계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태초로부터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내 생각은 평화의 생각이지 고난을 줄 생각이 아니다.”

그러나 주님의 계획은 주님의 심중에 숨겨져 있었으므로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없었습니다.

“주님의 생각을 잘 안 사람이 어디 있었으며 주님의 의논 상대가 될 만한 사람이 또 어디 있었습니까?”

 

그래서 평화의 계획은 평화의 작업에로 내려왔습니다. “말씀은 사람이 되시어 지금 우리 가운데 거처하십니다.”

그분은 특히 신앙을 통해서 우리 마음속에 거처하시고 우리의 기억속에 거처하시고 우리 생각 속에 거처하시며 우리의 상상력에까지 내려오십니다.

그분이 이미 우리들 가운데 오지 않으셨다면 사람은 환상이 만들어낸 하나의 우상밖에는 하느님에 대해 무슨 관념을 가질 수 있었겠습니다?

하느님은 파악할 수 없고 다다를 수 없고 보이지 않으시며 결코 인식할 수 없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분은 사람들이 당신을 이해하기를 원하시고 당신을 보기를 원하시며 당신에 대한 관념을 갖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어디에서 그리고 언제 당신 자신을 보여 주셨습니까?“

말구유에 누워 계실때, 동정녀의 품에 안겨 게실 때, 산에서 설교하실때, 기도 중에 밤을 지새우실 때,

또는 십자가에 매달리시어 죽음이 다가오자 얼굴이 창백해지셨을 때,죽은 이들 가운데서 해방되시어 명부에서 다스리실때,

또는 사흘 만에 부활하시어 승리의 표지인 못 자국을 사도들에게 보여 주실 때,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들이 보는 데서 하늘의 은밀한 곳에로 승천하실 때입니다.

 

누가 이 모든 신비들을 참되게 경건하게 또 거룩하게 묵상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이 신비들을 생각할 때 하느님을 생각합니다.

이 모든 신비들 안에서 나는 하느님을 발견합니다. 나는 이런 신비들에 대해 묵상하는 것을 지혜라고 일컫습니다.

아론의 지팡이가 이들 새싹들에다 그렇게도 풍성히 발생시키고

마리아께서 위에서 가져다가 우리에게 풍부히 부어 주신 그 향기를 되맡아 보는 일을 나는 슬기라고 생각합니다.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축일:8월20일.게시판1324번


■ 발 현

교회 안에서는 마리아가 발현하셨다고 믿고 순례하는 성지들이 수없이 많이 있고 또 오늘날에도 세계 도처에서 마리아의 발현이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많이 있다.

루르드와 파티마가 그 대표적인 순례 성지인데, 과연 발현은 어떤 현상일까?

 

L. 부이엘은 "발현이란 감각을 초월하여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 하느님의 현현(顯現, MANIFESTATION) 또는 천사나 죽은 성인들의 출현"이라고 정의하였다.

이 정의에 따르면, 발현을 인식하는 형태는 감각 기관에 의한 것이나, 발현이 그 자체로 감지될 수 없는 대상도 있고(하느님, 천사),

우리들의 현재 인식 능력으로 감지할 수 없는 것도 있다(예컨대, 영광스럽게 되신 그리스도의 몸과 마리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발현은 순전히 주관적인 경험이 결코 아니다.

발현은 출현하여 그 자체를 알게 하는 어떤 존재와 실제로 접촉하게 하는, 어떤 초월적인 힘의 개입에서부터 일어난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렇다면, 이같은 "인식"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이것이 문제시된다.

이 때문에 교회는 발현에 대하여 항상 신중한 자세로 임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올바른 발현이면 반드시 하느님으로부터 나오는 신비적인 어떤 특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마리아의 발현은 성모님이 교회의 생활에 적극 참여하고 계심을 증명한다.

마리아의 발현은 당신의 "모성적 사랑"을 특별한 형태로 표현하는 것이며, 이로써 "당신 아들의 형제들이 지상 여정에서 위험과 고통 중에 있는 것을 돌보시어

행복한 고향으로 인도해 주신다"(교회 62). 그리고 발현의 목적은 새로운 계시를 주시기 보다는 복음서의 가르침을 상기시키고, 어떤 교리를 특히 강조하는데 있다.

마리아는 당신 자신의 말을 하시지 않고, 마치 가나 혼인 잔치에서 아들 예수의 명을 따르라고 지시한 것처럼, 아드님의 메시지를 반복하신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만일 어느 "발현의 메시지가 계시 진리나 교회의 가르침과 위배된다면, 이것은 올바른 발현이 아니라는 표시가 되며, 의식적이거나 혹은 무의식적인 거짓말인 것이다.

따라서 마리아의발현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결정짓는 것은 전적으로 교회의 권위에 속하는데, 대개는 최초의 발현이 있는 교구의 주교들일 경우가 많이 있다.

따라서 발현 장소에 대한 공적인 공경과 메시지의 선포는 교회 권위 결정 후에만 가능하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한 교회의 권위의 결정은 절대 확실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따라서 교회는 어떤 발현이든 간에 믿음의 내적 동의를 명하지 않는다.

즉, 발현은 신앙 조항이 아니다. 그러나 만일 교회 권위가 ’아니다’고 말하면서 금지하면, 신자들은 순종해야 할 의무가 있다.

마리아께서는 당신 아들의 교회를 반대하면서까지 활동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또 발현의 기적적인 어떤 면, 말하자면 발현한 곳의 샘에서 나온 물이 치유의 효과가 있다는 등등은,

그 자체를 중요하다고 인정할 수 있으나, 거기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

그 대신, 우리들은 하느님의 자녀들인 우리 인류를 위해 그리고 교회와 세상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하여 성모님이 요구하시고 명하시는

복음적 메시지(회개, 기도, 보속 등등)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실천해야 한다. 이것이 당신 아들의 형제들인 우리가 어머니 마리아의 소망을 이해하는 길인 것이다.


■사적 계시와 성모 발현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성모 발현은

성모 마리아가 정상적이고 자연적인 방법을 초월한 특이한 방법으로

어떤 특정인에게 나타난 현상으로 교회에서는 여러 곳의 성모 발현과 그 발현 때 이루어진 사적(私的 )계시를 인정한 바 있습니다.

 

사적(私的) 계시는 공적(公的) 계시의 진설성을 확인하고 재조명할 뿐만 아니라

변천하는 시대의 특수 상황에서 신앙이나 윤리에 관한 가르침을 효과적으로 실천하는 방법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보조적인 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적 계시가 진실한 것이 되려면 언제나 성서와 전승 및 교회의 가르침에 일치하고, 또 그것을 통해 교회에 유익을 주고 하느님의 영광을 증진시켜야 합니다.

 

사적 계시 및 이에 결부된 신비 현상에 지나친 관심을 가질 때 흔히 오류나 기만에 빠져 신앙 생활에 큰 해독을 끼칠 수가 있습니다.

성모님의 발현 때 전해지는 메시지가 바로 사적 계시에 해당합니다.

 

이 사적 계시의 진실성을 증거하기 위해 흔히 기적이나 신비 현상 등이 나타납니다.

하지만 그 메시지들이 복음 자체는 아닙니다.

교회 역시 그 메시지들이 복음을 대치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모 발현의 어떠한 메시지라도 그것이 공식적인 교도권의 교의에 부합되어야만 진정한 사적 계시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과달루페] [파리] [라살레트] [루르드] [파티마] [바뇌]

 

■과달루페의 성모.멕시코

1531년 l2월 9일 성모 마리아께서 예비자 교리를 배우고 있던 멕시코 원주민 후안 디에고(Juan Diego)에게 나타난 후 모두 4차례에 걸쳐 메시지를 주었습니다.

이때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후 스페인이 멕시코를 정복한 지 10년째 되는 해로서 원주민들은 정복자의 폭정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발현 장소는 원주민들이 신전을 세웠던 테페약(TEPEYAC) 언덕이었고,

성모님은 인디언의 피부를 하고 장밋빛 옷에 푸른 망토를 두르고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약간 숙인 모습으로 발현하였습니다.

성모님은 “나는 평생 동정이며, 하느님의 어머니임이 알려지기를 원하고,

어려울 때에 정성을 다해 나를 찾는 이들에게 나의 자비를 드러내도록 이 자리에 성당을 짓기를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 외국 홈페이지 http://www.sancta.org/

*과달루페의 성모마리아 축일:12월12일.게시판1520번.

*성 후안 디에고 축일:12월9일.게시판1512번.


■파리

1830년 11월 27일 파리에 있는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 지원자였던 가타리나라브레(Catherine Laboure)에게 성모님이 발현하셨습니다.

당시 프랑스는 노동자들이 착취당하고, 가치관의 혼란으로 교회의 신앙이 흔들리고 혁명으로 왕정이 무너지는 등 사회의 변혁기였습니다.

성모님은 지구 위에 서서 두 팔을 활짝 펼친 모습으로 나타났는데,

그 주위에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여. 당신께 의탁하는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성모님은 이 모습대로 메달을 만들어 지니는 사람은 큰 은총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고, 그 후 메달 착용이 늘어나면서 수많은 기적이 일어나

기적의 메달(Medaille miraculeuse)’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 발현으로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에 대한 신심이 고조되었으며,

마침내 교황 비오 9세는 1854년 12월 8일에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믿을 교리로 선포하였습니다.

 

*침묵의 성녀 가타리나 라브레축일:11월28일.게시판775 번,1495번.

*원죄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마리아 축일:12월8일.게시판1511번.


■라 살레트의 성모.LA SALETTE.프랑스

1846년 9월 19일 프랑스 가르가스산 기슭에 있는 라 살레트(La Salette)에서

11세의 막시망 지로(Maximin Giraud)와 15세의 멜라니 마티유 칼바(Melanie Mathieu Calvat)에게

발현하신 성모님은 순백색의 부인복에 황금색 앞치마를 두르고 장미 술이 달린 망토를 어깨에 걸치고 장미관을 쓰고 계셨습니다.

당시는 과학 만능주의·자유주의·무신론 등으로 교회의 전통 신앙과 성서의 가르침이 위기를 맞고 있었습니다.

성모님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죄인들의 화해자’라고 밝히면서

인류가 회개하여 하느님과 화해하면 축복을 받지만 그렇지 않으면 큰 벌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이 메시지를 무시하였으나. 1846년 이래 대흉년으로 유럽에서만 100만 명 이상이 굶어 죽고 1870년에는 보불(普佛)전쟁까지 발발하자

회개하는 순례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였습니다


■루르드.프랑스

1858년 2월 11일부터 7월 16일까지 18회에 걸쳐 루르드의 동굴에서 14세의 소녀 베르나데트(Bernadette 1844~1879)에게 발현하셨습니다.

이때는 교황 비오 9세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리를 반포한 지 4년째 되는 해였는데,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자유주의 사상의 팽배로 지식층이 교회의 가르침을 불신하고 속속 교회를 떠나는 경향이 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모 마리아는 흰옷에 푸른색 허리띠를 두르고 오른팔에 묵주를 늘어뜨리고 양손을 가슴에 모은 모습으로 발현하셨습니다.

성모님은 자신을 ’원죄 없는 잉태된 자’(Immaculata Conceptio)라고 밝히면서 기도와 보속, 회개를 촉구하셨으며 특히 묵주 기도를 권하셨습니다.

그 후 매년 수백만 명의 순례자가 루르드를 방문하였고 기적도 자주 일어났습니다.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마리아(세계병자의 날)축일:게시판946번.1611번.

*성녀 베르나데트 축일:4월16일.게시판1093번

 

*루르드 홈페이지 http://www.lourdes-france.com/bonjour.htm

*루르드 순례자료 http://bh.kyungpook.ac.kr/~psdon/catholic/lourdes.htm


■파티마.포르투칼

제 1차 세계대전이 절정에 달했던 1917년 5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6차례에 걸쳐 포르투칼 레이리아 교구의 작은 마을 파티마(fatima)에서

순박한 목동인 10세의 루치아(Lucia)와 루치아의 사촌 동생들인 7세의 히야친타(Jacinta)와 9세의 프란치스코(Frnacisco)에게 발현하였습니다.

발현 때마다 성모 마리아의 모습은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흰옷에 흰 망토를 걸치고 묵주를 든 양손을 가슴에 모으고 맨발로 구름을 밟고 선 모습이었습니다.

성모님은 자신을 ’로사리오의 여왕’이라고 칭하고 세계 평화를 위해 매일 묵주기도를 바칠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특히 러시아를 당신 성심에게 봉헌하고 매월 첫 토요일에 영성체 할 것을 요청하면서, 끊임없는 기도와 희생과 보속을 통해서만 세계 평화와 러시아의 회개 및

교회의 안정과 평온이 이루어지리라고 예언하셨습니다. 1917년 10월에 소련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났고, 이듬해에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났으며,

1942년 10월에 교황 비오 12세는 전세계, 특히 러시아를 마리아의 티없으신 성심에게 봉헌하였습니다.

 

 

*파티마의 복되신 동정마리아 축일:5월13일.게시판1760번.

*파티마의 복녀 히야친따 축일:2월20일.게시판1626번.

*파티마의 복자 프란치스코 축일:4월4일.

*외국 홈페이지 http://www.fatima.org


■바뇌.벨지움

1933년 1월 15일 독일 국경에서 가까운 벨기에의 바뇌(Banneux)에서 비신자인 12세의 소녀 마리에트(Mariette Beco)에게 성모님이 발현하셨습니다.

당시는 독일의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있던 때였는데, 성모님은 루르드 발현 때처럼 흰옷에 푸른 허리띠를 두르고 고개를 약간 왼쪽으로 숙인 채 합장하고

오른팔에는 묵주를 늘어뜨린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성모님은 자신을 ’가난한 자의 동정녀’라고 칭하고,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로하러 왔다고 하면서

기도를 많이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그 후 수많은 성당이 바뇌의 성모님께 봉헌되었습니다.

 

★이상의 성모님의 발현들은 모두 교회의 정식인가를 받았습니다.

 

이외에도 1928~1975년 사이에 발생하였던 성모님의 발현들 중에서 교회의 공식 인가나 동의를 받지 못한 발현은 230 여 건에 달합니다.

*교회가 공식적으로 승인한 발현 참조 http://www.apparitions.org/

 

*바오로수도회에서 http://www.paolo.net/

*바오로딸수도회에서 http://www.paulin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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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사리오가 시작되게 하고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는 구조를 이루는데에 누구보다 많은 기여를 한 것은 도미니코회의 알라노 데 루페 (1428-1478)였다.

그는 여러 단계의 작업을 했다.

우선 기도들을 개선하여 그가 "묵주 기도의 영혼"이라고 불렀던 묵상적인 요소들을 "묵주 기도의 육체"를 이루었던 소리내어 하는 기도보다 중시했다.

그는 구원 역사에서의 사건들을 50개씩 세 무리로, 즉 환희의 신비, 고통의 신비, 영광의 신비로 나누고 그 각각을 다섯 단으로 나누었다.

이것은 오늘날의 15단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시편"이 성 도미니코에게서 시작되었다고 했는데, 이것은 역사적으로 확증된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는 동료들로 하여금, 묵주 기도를 자신들의 사도직으로 삼게 했다. 실제로 도미니칸들은,

그때부터 언제나 이 기도를 전파했고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알라노는 무엇보다도 사도였고, 특히 네덜란드와 독일 북부에서 대중적 선교에 뛰어난 설교자였다.

이러한 선교를 하는 동안 그는 지칠 줄 모르고 로사리오회를 조직하고,

이 기도가 신앙에서 성장하는 수단이 되교 교회의 적들에 맞서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고 하였다.

이 마지막 확신은 지극히 중요한 것이어서,

묵주 기도에 관한 첫 교황 교서에 언급되어 우리에게까지 전해진다(Ea quae, 식스토 4세, 1479년 5월 12일자).

거기에서 묵주 기도는 "경건한고 열심한 기도의 방법으로서,

천사의 인사를 매일 - 하느님과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기리며, 그리고 세상을 위협하는 위험들에 맞서

-다윗의 시편에 있는 시편 수만큼 드리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나온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이 기도가 거의 가톨릭 신앙의 상징이 됨으로써 로사리오회가 자주 개신교에 효과있게 맞서게 되었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마침내, 이 확신은 레판토 해전의 승리를 통하여 역사적으로 분명히 입증되었다 (1571년 10월 7일).

이 때에 도미니칸이었던 성 비오 5세 교황은, 거기에서 싸우고 있던 군인들의 대포와 용기보다도 묵주 기도라는 "무기"에 그 승리를 돌렸다.

그는 이 승리의 날인 10월 7일을 온 교회에서 지낼 지극히 거룩한 로사리오의 축일로 제정하기까지 했다.

 

후에 Consueverunt Romani Pontifices라는 교서로 규정화된 최종적인 묵주기도의 구조는,

마찬가지로 도미니칸이었던 알베르토 디 카스텔로에 의한 것이다.

그는 각 성모송 사이에 묵상을 위한 간단한 도움을 주도록 자료를 제시함으로써 이 신심 행위를 더욱 가다듬었다.

 

문예 부홍 시기 동안, 여러 수도회들에서 몇 가지 형태의 묵주 기도들의 사용되었다.

그 중에는 성모의 종 수도회에서 권고한 "성모 칠고의 묵주 기도"가 있다.

그러나, 결국 우세했던 것은 도미니코 수도회에서 장려했던 형태였고

이는 위에 인용했던 교황 비오 5세의 교서 Consueverunt Romani Pontifices를 비롯한많은 교황 문헌들에서 언급되었다.

그 교서에서 묵주의 기도는, "다윗의 시편 수를 따라 천사의 인사를 150번 반복하며 복되신 동정녀를 공경하는 것이며,

각 단마다 주의 기도 한 번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삶 전체를 나타내는 특별한 묵상들을 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묵주 기도의 열매에 대하여, 그 교서는 지극히 웅변적으로 말한다.

"자주 마음으로 이 기도를 하는 신자들은, 그 묵상으로 불이 붙어, 다른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이단의 어둠은 물러나고 가톨릭 신앙의 빛이 다시 활보하게 되었다."

 

*도미니코수도회홈에서 http://www.op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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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ttp://cafe.daum.net/bbadaking/KVpZ/2987


https://youtu.be/ZewhVSf7TY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