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체조배에 관한 일화

 

1981년 성 베드로 바실리카 대성전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성체조배에 관해 강조하시며 이렇게 선포하셨다.

 

"지구상에 지속적인 평화를 정립시키는 가장 훌륭하고 가장 확실하고 가장 효과적인 길은 지속적인 성체조배의 위대한 힘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내가 마더 데레사와 함께 차를 타고 자비의 집의 한 수도원에서 캘커타(Calcutta, 콜카타(Kolkata)) 시내에 있는 또다른 수도원으로 여행할 때였습니다.  다섯 번째 마리아의 교의에 관한 마더 데레사의 질문에 답해 준 후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마더 데레사 수녀님, 미국을 회개시키는 데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마더 데레사는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만일 미국에 있는 모든 본당이 하루에 3시간씩 성체조배를 한다면 미국은 회개할 것입니다."

 

(발췌:'마리아(maria)' 통권 105호, 아베마리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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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기도 - 루 몽페라토의 기적

 

가톨릭 교회는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작은 마을 루(Lu)를

사제와 신자 모두를 위한 영적 모성의 독특한 모범 중의 하나로 여긴다.

약 삼천 명의 인구를 가진 이 마을은 투린 동쪽 50km 지점에 있는 시골 마을이다.

1881년 루의 어머니들이  중대한 결과를 낳을 결단을 하지 않았다면,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결코 알려지지 않았을 작은 마을이다.

 

 

몇 명의 어머니들이 자신들의 아들 중 한 명이 사제가 되거나 딸 중 한 명이 하느님을 섬기는 데 일생을 완전히 바치게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마음속에 품었다. 

그들은 본당 사제인 알렉산드로 카노라 몬시뇰의 지도 아래 매주 화요일 성체 조배를 하기 위해 모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매달 첫 일요일에 주님의 부르심을 청하는 지향으로 성체를 영했다. 미사 후에는 모든 어머니들이 사제 성소를 청하는 기도를 다 함께 바쳤다. 

이 어머니들의 신실한 기도와 다른 부모들의 긍정적인 반응으로 기쁨이 넘치는 그리스도 신앙이 가정 안에 깊이 퍼져갔고, 아이들은 자신의 성소를 훨씬 쉽게 인식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많지만 뽑히는 사람은 적다." 

(마태 22,14)

 

많은 사람을 부르셨지만 몇 사람만이 그 부르심에 응답한다.

 

하느님께서 어머니들의 기도에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응답하시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 작은 마을 루에서 323명이 부르심을 받다니! 152명의 사제(교구 사제와 수도 사제)와 41개 수도회 소속의 171명의 수녀! 그들 중 100명 이상이 아직도 살아있다.


어떤 가정에서는 서너 명이 부르심을 받았다. 특히 리날디 가정이 가장 유명한데, 하느님께서는 그 집에서 일곱 자녀를 부르셨다. 두 딸은 살레시오회 수녀가 되어 둘 다 산토도밍고로 용감하게 전교를 떠났다. 다섯 아들은 모두 살레시오회 사제가 되었다. 리날디 형제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복자 필립보 리날디다. 그는 요한 보스코 성인의 후계자로 살레시오 수도회의 3대 총장이 되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를 1990년 4월 29일 시복했다.

 

리날디 가정에서 보듯, 이 작은 마을에서 부르심을 받은 많은 이들이 살레시오회에 입회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다. 왜냐하면 요한 보스코 성인이 살아생전 네 번이나 루를 방문했기 때문이다. 첫 번 째 방문에서 성인은 투린에 있는 그의 수도회에 입회하길 원하는 여섯 명의 젊은 여성을 데리고 돌아갔다. 요한 보스코 성인은 자신의 영적인 아들인 복자 필립보 리날디의 첫 미사를 루에서 공동 집전했다. 복자 필립보는 루의 가정 신심을 늘 즐겁게 회상했다.

 

"우리 부모님들의 신심은 이런 것이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자녀를 주셨으니 주님께서 부르실 때 우리는 '아니오'라고 대답할 수 없다.'"

 

루이지 보르지나와 피에트로 로타는 요한 보스코의 영성대로 얼마나 성실히 살았던지 루이지는 '브라질의 요한 보스코'로, 피에트로는 '바텔리나의 요한 보스코'로 불렸다. 언젠가 교황 요한 23세는 루 출신인 팔마의 대주교, 몬시뇰 에바죤 콜리에 대해,

 

"내가 아니라 그가 교황이 됐어야 했다. 그는 위대한 교황이 될 모든 자질을 가졌다."

 

라고 말했다.

 

전세계에 흩어져있는 루 출신의 모든 사제들과 수도자들이 십 년마다 루에서 만나는 "재회의 날"은 오늘날에도 계속된다. 루 교구의 마리오 메다 신부는, 현재 24년 째 행해지는 이 재회는 진정한 축제로서, 이토록 놀라운 일을 루에 베풀어주시는 하느님께 바치는 감사 축제라고 말한다.

 

"오 하느님, 저의 아들 중 한 명이 사제가 될 수 있게 허락하소서!

제가 착한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하시고

제 자녀들이 언제나 착한 일을 하도록 이끌어주소서.

오 하느님, 당신께 거룩한 사제를 드릴 수 있도록 은총주소서!"


- 루의 어머니들이 바친 기도 -


 

(발췌:'마리아(maria)' 통권 134호, 독일 'Triumph des Herzens'에서, 아베마리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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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지속적인 성체조배가 시작되다

 

교황 바오로 2세께서 한국 방문을 마치신 뒤 1주일 후 한국 (가톨릭)교회 안에 새로운 사도직이 소개되었다. "끊임 없는 성체조배"라 부르는 이 사도직은 교황께서 1980년 모든 주교들에게 성 목요일 서한을 보내어 권고하신 내용에 대한 응답이었다. 즉,

 

"교회와 세계는 성체공경의 크나큰 필요성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사랑의 성체안에서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성체조배중이나 묵상중에 그 분을 대하고 있는 동안 겸손해 지도록 합시다. 그 시간은 믿음이 충만한 시간이며 그리고 세상의 죄악과 오류를 보속하려는 준비를 갖추는 시간인 것입니다. 우리의 성체조배가 결코 중단되지 말기를 바랍니다."

 

이 사도직은 교황께서 1981년 12월 2일 성 베드로 대성전의 소성당 안에서 계속적인 성체조배를 시작하시어 사목자의 모범을 보이심으로 그 불이 당겨졌다. 또한 교황께서 한국 방문기간중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성체대전에 매일 2시간 동안 머물러 계시는 개인적 표양을 보이셨으므로 더욱 고무되었다.

 

"지속적인 본당 성체조배"는 1984년 5월 13일 인천에 있는 "원죄없으신 성모 성심 성당"에서 주일미사 시간마다 성체조배를 장려함으로써 시작되었다. 매 강론 끝에 신자들로 하여금 적어도 일주일에 한시간 현시된 성체 앞에서 조배하기 위해 서명해 줄 것을 권유하였다. 미사에 참석했던 신자들 중 60%인 500여명의 신자들이 서명했다. 이 서명대열에 13세의 학생들로부터 할머니, 할아버지들에 이르기까지 줄을 이었다. 그리고 매일 한시간의 성시간을 보낼것을 약속한 사람들도 포함되었다.

 

이 새로운 평신도 사도직의 목적은 하루 24시간 성체안에 계신 주의 대전에 그들의 본당을 대표하는 최소한 2명의 조배자들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첫 금요일인 6월 1일에 지속적인 성체조배는 주 7일, 매일, 매시간 2~6명씩 조배를 서약한 본당 신자들과 더불어 이 본당에서 시작되었다.


성체조배 계획의 시간표는 평신도 봉사위원회가 5월 13일 열심한 신자들이 낸 서명지를 가지고 작성했다. 그리고 그 다음 3주일 동안 자원 성체조배 자들을 만나 매 주일 168 시간 중 한 시간씩을 그들에게 할당하여 모든 시간에 조배자 모두를 완전히 배치시켰다. 그리하여 지속적인 성체 조배는 시작될 수 있었다.

 

일단 시작하자 그 봉사위원회 회원들은  그 주간 조배자들과 접촉을 계속했는데 이는 그들이 서약을 잘 지키고 있는지 확실히 하고, 그들의 노력을 격려해 주고 그리고 필요할 때는 대리자를 준비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성체 조배자들이 묵상기도나 혹은 성서, 기도서, 묵주등의 보조물을 사용함으로써 조배시간을 어떻게 적절히 보내야 하는지 가르친다.

 

한국에서 지속적인 성체조배를 실천에 옮긴 두 번째 본당도 역시 인천에 있는 본당이었으며 이러한 조배계획은 부활축일에 시작되었다. 이 본당의 성체조배계획은 그 계획의 신축성을 보임에 있어 첫번째 본당과 뚜렷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신자수가 첫번째 본당 신자의 절반도 안되는 아주 작은 본당이었다. 이 본당 내 자원성체조배자 수에 따라 1주일에 단지 3일간의 성체조배를 허가했다. 그렇지만 첫번째 본당 경우와 마찬가지로 하루 24시간 성체조배가 이루어졌다.

 

왜냐하면 이른 아침 성체조배에 수반되는 희생이 이 계획의 성패에 중요한 요소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이 "희생의 시간"을 자원했기 때문이다. 또한 첫번째 본당이 중류급이고 한국인 사목자를 둔 본당인데 반하여 후자는 사목자가 외국인 선교사이고 빈약한 본당이라는 점에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 본당 신자수가 늘어나면 매주 조배일수를 늘리도록 허락하는 계획을 세우게 될 것이다. 한편 서울에 있는 본당에서도 지속적인 성체조배가 세번째로 시작되었다. 성체축일에 이 본당주일 미사참례자의 75%가 서명을 한 것이다.

 

처음 본당에서 실행한 성체조배처럼 일주일 내내 조배를 하겠다는 한국에 소개된 지속적인 성체조배의 시스템은 3년전 마틴 루시아 신부가 미국에서 최초로 실행에 옮긴 것이다. 마틴 신부의 자의로 이러한 사도직에 전념토록 하는 임무를 맡아 3년 이내로 그는 미국전체 본당에 지속적인 성체조배를 소개하였다.


지난 3년동안 마틴 신부는 현재 한국에서 실행하는 형태의 성체조배 시스템으로 발전시켰다. 한국에서 주일 강론을 시발점으로 하여 그는 위에 설명한 것 같은 지속적인 성체조배를 감독하고 준비하는 조배자 가운데 자발적인 평신도 그룹을 훈련시켰는데 이는 바쁜 사목자가 성체조배로 시간을 모두 소비하는 것을 방지하고 사제들로 하여금 성체를 현시하는 일과 미사성제를 충실히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여러해 동안 자신의 본당에서 이러한 지속적인 성체조배 시스템을 시행했던 사제들의 증언에 의해 다음과 같은 사실이 알려졌다. 즉 성체조배자들이 자신의 서약을 틀림없이 지켰고 미사참례자 수가 증가했으며 사제들과 신자들 모두의 기도생활에 현저한 깊이가 생긴 것이다.


성체조배가 이루어지고 있는 (가톨릭)교회에서는 어떠한 도난이나 불미한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성체조배자들에 대해 감사하게 되었다. 그러한 이유로 전에는 잠궜던 성당 문들을 지금은 하루종일 열어놓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성체조배를 성당안에서 하든 분리된 기도실에서 하든 자원 성체조배자들 뿐아니라 어떤 본당 신자들도 어느 시간이든지 성체대전을 찾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폭력의 거리로 알려진 지역에 위치한 본당들도 혼자 성체조배하던 사람이 비록 늦은 밤일지라도 (가톨릭)교회나 노상에서 습격을 받은 적이 전혀 없었다고 전해주고 있다.

 

그리고 한국에 이 계획을 시행함에 있어 몇가지 융통성이 생겼다. 예를들어 외국인 조배자들을 위해 의자와 방석을 마련해 놓는 대신 첫번째 본당에서는 전통적인 한국식 온돌방을 사용했다. 난방값도 많이 들지 않는 이 온돌방은 성체조배자들이 마치 그들 집에서 하는것 처럼 마루위에 앉거나 무릎을 꿇을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두번째로는 지극히 거룩하신 성체를 경배하는 성모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다. 한국의 가톨릭 신자들은 매우 깊은 성모성심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들로 하여금 미사때 지속적인 성체조배에 서명하고 성모님께 자신을 공공연히 봉헌하도록 권고하며 성모님이 그들을 열렬하고 참을성 있는 성체조배자로 만들어 주시기를 요청하는 것이다. 성모에 대한 봉헌으로 그들은 기꺼이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봉헌의 표시로 성모님의 갈색 스카풀라를 착용한다.

 

(발췌:'마리아(maria)' 통권 16호,  인천교구에서 백제랄드 신부, 아베마리아출판사)





출처 : http://blog.daum.net/endear747/148768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