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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멕시코 성부 성심 수도회 다니엘 헤그넌 신부님 강론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루이사 피카레타(사진)라는 분께 가르쳐 주신 하느님의 뜻이라는 영성에 대한 글인데요, 조금 긴 내용이지만 읽어보시면 분명히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출처를 단지 '예배자를 위한 메시지 - 싸이월드 페이퍼'라고만 해놓고 주소는 안 적어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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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성부 성심 수도회 다니엘 헤그넌 신부님 강론


오늘 제 희망 사항은 우리가 오늘 하루를 위해서 성심 안에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루이사 피까레타에게 “네가 하루를 시작할 때, 내 마음안으로 내 성심안으로 들어오라.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여, 제게 오소서. 제게 오셔서 제가 하는 모든 행동, 생각, 말 여기에서 다 하느님의 뜻이 직접 하소서.’ 그렇게 기도해서 너의 뜻과 나의 뜻, 네가 하는 모든 전제가 나의 뜻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서 이렇게 하지요.
예수님께서 이것은 아침에 태양이 뜨는 것과 같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하루 종일 있으면서 어떤 때, 구름이 태양을 가리지요. 그래서 우리는 하루 중에 아침에 봉헌했던 것을 다시 갱신해야만 합니다. 구름이 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느낌들, 행동들, 죄… 주님, 용서해 주십시오. 지금 다시 주님 성심 안으로 들어갑니다. 제가 당신 성심을 절대 떠나지 않게 해 주세요. 당신께서 미사 동안에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라고 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분을 통해서…’ 한국말로는 어떻게 표현이 될 지 모르겠는데요, 스페인어로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라고 표현됩니다.
우리가 겸손해 질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는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을 언제나 항구히 주님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주님, 주님을 위해서 해요. 우리가 이것을 하는 것은 주님을 위해서 합니다.
제가 주님을 위해서 하는 이 모든 것을 주님이 저를 위해서 하느님 아버지께 봉헌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아, 강의 잘하셨습니다.’라고 박수를 치면, 저는 ‘아, 주님,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라고 하는 거지요. 사람들이 하느님께 바쳐져야 할 영광을 한 방울이라도 빼앗아 가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다 주님을 위해서 하도록, 우리 자신에 대해서 죽고,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을 다 주님께 집중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주님 방향으로 향해서 가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여러분 안에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느 왕국에서 산다고 합시다. 그런데 왕이 저 멀리 가 계신다고 합시다.
우리가 다 신하이고 백성인데, 왕은 저 멀리 멀리 다른 궁전에서 산다고 합시다.
여러분처럼 평범한 어떤 사람이 설거지도 하고, 빨래도 하고…조그마한 집에서 집안일을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누가 문을 두드립니다. 그래서 이 자매가 창 밖을 내다보았더니, 기자들도 보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왕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거기 모인 모든 사람들은 ‘왜 임금이 이런 곳에 들어가려 하시나!’하며 의아하게 바라보고 있었고, 이 자매는 임금께 문을 열어드렸습니다. 그리고 임금께 ‘제가 무얼 해드릴 것이 있나요?’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임금은 ‘그냥 자매에게 방문 온 것 뿐이오. 지금 뭐하고 있었소?’하고 묻자, 그 자매는‘마루를 닦고, 집안일을 하고 있었어요.’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임금은‘내가 뭐 도울 일 없는가?’라고 해서 그 자매는 빗자루도 드리고 이 일, 저 일 임금과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서는 임금은‘뭐, 더 해 줄건 없는가? 그릇들을 닦으려고? 내가 그릇 좀 닦아줄까? 아니면, 다른 건 뭐 더해줄 거 없나?’하였습니다.
그 자매는‘제가 아침에 하려고 했던 것은 다 했는데요.’하고 말씀드렸습니다. 임금은 자매에게 ‘당신이 나를 오라고 청하였으니, 이제는 내가 당신을 내 궁으로 오라고 청하겠소. 나는 전세계를 다스리는 임금인데, 오늘은 아프리카 쪽의 일을 봐야 하는데, 당신이 나를 도와주고, 내일은 아시아, 그 다음은 서울, 이렇게 같이 일 좀 합시다.’

바로 이 예화는 예수님께서 루이사 피카레타에게 해 주신 말씀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루이사 피까레타가 예수님께 ‘저에게 와 주세요. 저에게도 와주세요.’라고 기도를 하니까, 예수님께서는 ‘자, 네가 나를 불러서 너에게 왔으니, 이제 내가 너를 부른다. 내가 이 우주를 창조하였으니, 너도 그 창조사업에 같이 참여하는 마음으로 함께 기도를 바쳐다오. 이 우주를 돌아다니면서 돌보는 일에 너도 와서 함께 해다오.’라고 말씀하셨답니다.

그래서 첫번째는 주님을 통해서, 두번째는 주님과 함께 하는 것으로,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한다는 것은 바로 예수님께 ‘저와 함께 해 주세요.’라고 청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번째는 주님 안에서 그분 안에서 입니다. 이것은 내가 주님 안으로 들어가고, 주님이 제 안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다른 단계의 영성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 옆에서 무슨 일을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내 안에 들어오셔서 그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오세요. 제가 지금 마루를 쓸고 있는데, 같이 쓸어 주세요. 당신이 이것을 쓸어주세요.’바로 예수님이 이 모든 것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한하신 분이시며, 그분이 하시는 모든 일의 가치 또한, 무한하십니다.

예수님이 지상에 사실 때 하셨던 모든 일 중 첫째는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신 것이고, 둘째는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하느님께 보속하시기 위해서이며, 셋째는 아프신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을 위로해 드리기 위해서 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을 예수님 안에서 하고, 예수님이 여러분 안에서 그 모든 일을 직접 이루어 가실 때에 ‘하느님의 뜻이여, 제안에 오시어 당신의 뜻을 직접 이루소서.’라는 기도로 하느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것이 됩니다.
그것이 바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언급하신 새로운 영성입니다. 그것이 신적인 거룩함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안에 있는 주님 이시기 때문이고, 여러분은 주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제 제 묵주를 가지고 묵주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묵주기도를 드리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이 묵주는 예수님께서 모린 자매에게 직접 보여주신 묵주인데, 성모송 한 알, 한 알 마다 태아 모형이 하나씩 들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묵주로 기도를 하는 것은 참으로 좋은 것입니다.
만일 제가 하느님의 뜻 안에서 기도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제안에 오시어 이 묵주기도를 함께 하신다면 어떨까요?  
예수님께서는 무한하시고 영원하신 분이시라서 천국에서는 시,공의 간격이 없기에 ‘하느님의 뜻이여, 제게 오소서. 제안에 오시어 기도해 주소서. 그리고 하느님 뜻 안에서 제가 이 묵주기도를 당신께 바치나이다.  또한, 지금까지 사람들이 당신께 바친 모든 묵주기도를 함께 바치오며,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바쳐질 모든 묵주기도를 함께 바치나이다.’ 이렇게 기도를 드릴 때, 묵주 한 단을 드리는 대신 저는 몇단 이나 묵주기도를 드리게 되지요?
우와~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이시기에 제안에서 저와 함께 기도를 드리실 때, 어떤 제약도 받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 안에서 저는 수백억의 기도를 바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제가 여기에 조금 늦게 도착했지요?
그래서 제가 주님께 ‘주님, 우리가 지금 가는 이 길 모두를 주님께 봉헌합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여, 제게 오시어 지금 이렇게 자동차를 타고 가는 이 길에 당신이 함께 해 주소서. 그리고 제가 지금까지 여행했던 그 모든 길과 앞으로 여행하게 될 모든 길까지도 당신께 바칩니다. 이 세상이 창조되었던 아담 때부터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여행했고, 여행하게 될 모든 이들의 길까지도 다 당신께 바칩니다.’라고 기도했답니다.

제가 작년에 뉴저지에서 강의를 했을 때의 일입니다. 제가 햇빛 찬란한 멕시코를 떠나서 뉴욕 공항에 내렸을 때에 눈사태가 일어날 정도로 눈바람이 세차게 몰아치고 있었습니다.
내가 피정에 늦을 거 때문에 초조해지는 거 대신  ‘주님, 여기 떨어지고 있는 모든 눈의 입자 하나, 하나를 주님께 바칩니다. 그리고 이 입자 하나하나는 “주님, 사랑해요. 주님, 찬미 받으소서.”입니다. 또한, 여기 뉴욕만이 아닌 전세계에 지금 내리고 있을 모든 눈 하나 하나까지도 당신께 바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렸던 모든 눈들, 이 지상 끝날 때까지 내리게 될 모든 눈들 입자 하나하나까지도 당신께 바칩니다. 이 모든 눈들이 “당신을 찬미합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로 바쳐지게 하소서.’

이처럼 제가 얼마나 많이 하느님 아버지께 찬미와 사랑을 바쳐지게 하는지 이해하실 수 있습니까?
그래서 이제는 제가 예수님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 안에서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 안에서…

제 동생의 아내되는 리사에게 이런 설명을 해 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리사에게서 전화가 왔었습니다. 리사는 저에게 ‘신부님, 이제 이해가 되었어요. 저는 정말 기저귀 가는 게 제일 싫은데, 제 아기 야고보의 기저귀를 갈고 있을 때, 제가 이제는 하느님 뜻 안에서 이 기저귀를 갈을 꺼야. 주님, 지금까지 기저귀를 갈았던 모든 것, 앞으로 기저귀를 갈게 될 모든 것을 당신께 바칩니다. 그리고 성모님께서 예수님의 기저귀를 갈아 주셨던 것처럼 지금 제 안에 오시어 대신 기저귀를 갈아주세요. 제가 지금 제 아이의 기저귀를 갈고 있지만, 이것은 성모님께서 제안에서 대신 예수님의 기저귀를 갈아 주는 거라고 생각하며 기도했었어요. 그리고 난 후에 정말 순식간에 제가 지금까지 제일 싫어했던 일이 가장 아름다운 기도가 되었어요. 그래서 그 때부터는 기도하는 시간, 기도 안하는 시간, 모든 것이 기도가 되었답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하신다면, 여러분의 모든 삶 안에서 기도하시는 것이 됩니다.
항구하게 아버지의 영광 안에서 사시는 것이 됩니다. 여러분께서 예수님의 성심 안에서 살고, 아버지의 영광안에 사실 때, 인내심 없는 행동은 이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주님, 제가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했던 모든 순간들을 주님께 봉헌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늦으셨던 때, 그런 모든 순간들도 다 봉헌합니다.’
마르타와 마리아가 예수님이 늦게 오셔서 라자로가 죽었다고 불평했지요…

여러분은 믿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어느날, 루이사 피카레타가 주님께 여쭈었습니다. ‘주님, 정말로 제가 그렇게 묵주기도를 바치면, 지금까지 바쳐졌던 모든 묵주기도가 또 앞으로 바치게 될 모든 묵주기도가 당신께 바쳐지게 되는 건가요?
주님께서는 루이사 피카레타에게 환시를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은 묵주기도 드렸던 것이 작은 태양이 되어서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태양들이 천국으로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는 것, 그것이 바로 데레사 성녀의 영혼의 성의 8번째 궁방이라고 , 새로운 단계의 영성이라고 합니다. 정말 위대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는 기도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설명하시면서 ‘네가 지금 기도할 때, 내가 네 안에 들어가서 기도하고, 내 안에 네가 들어와서 기도하니까, 하느님은 무한하시고 영원하신 분이시므로, 하느님 바로 그분께서 직접 바치는 기도이기 때문에 네가 이렇게 하는 기도는 천국에서 성인, 성녀들이 체험하는 영광을 더 크게 증가시켜 준다.

예수님께서 모린 자매에게 당신 성심을 꺼내시어 당신 성심 안의 심방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 중 4번째 심방은 천국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완전히 예수님의 뜻에 순응해서 ‘아버지, 나의 뜻이 아니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 지소서.’…
여기에서 더 진보하면 5번째 심방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은 나의 뜻과 주님의 뜻이 하나를 이룬 것 뿐만 아니라, 완전히 하나의 뜻이 됩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면 6번째 심방도 있습니다. 그 뜻이 하느님 아버지의 뜻 안에서 변화되어 완전히 그분의 뜻으로 신성화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당신의 신성이 우리의 인성 안에서 무엇을 이루셨는지를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신성이 우리의 인성 안에서도 똑같이 하실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상에 잉태되시는 그 순간부터 무엇을 하셨지요? 예수님이 하셨던 모든 것, 예수님의 심장 박동 하나하나, 예수님의 숨결 하나하나, 이 모든 것이 인간이 아버지께 죄지은 모든 것을 보상하기 위해서, 아버지의 상하신 마음을 위로해 드리기 위해서, 또,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서 아버지께 바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교리문답 때에 우리가 이 세상에 창조된 이유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섬기기 위한 것이다.’라고 배웠습니다.
어릴 때에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릴 줄 아는 나이가 되었을 때부터 우리가 죽을 때까지 매 현재 순간순간마다, 선과 악을 결정하는 순간순간마다, 우리의 모든 결정이 하느님을 더 사랑하고, 우리의 모든 힘과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섬기기 위한 쪽으로 결정해야 합니다. 또한 시간이 흐르면서 그 모든 결정들이 하느님께 더욱 강하게 영광드릴 수 있도록 살아 가는 것이 우리 삶의 목적이며,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첫번째로 가져야 할 태도가 어떤 태도입니까?
그것은 바로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 루이사에게 인류가 당신이 하시는 그 많은 일에 대해서 감사하지 않는 것 때문에 당신 마음이 얼마나 상하셨는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가져야 할 태도는 주의를 집중해서 보는 것입니다. 주의를 집중하는 일, 내가 그냥 넋 빠진 바보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강렬하게 집중적으로 예수님의 성심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세 번째의 태도는 성실함, 충실함입니다. 내가 예수님 안에서 살고, 예수님이 내 안에서 사시게끔 충실히 하는 것, 그리고 주님의 자비에 신뢰하는 것, 의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충실하지 못하지요? 예수님께서 루이사 피카레타에게 ‘실지로 의로운 것같이 하면서 얼마나 많은 좋은 일들, 좋은 행실들을 깨끗치 못한 의도로 하고 있는가?’ 라고 하셨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신자분이 저에게 와서 ‘신부님, 제1독서 제가 해도 될까요?’라고 했을 때, 저는 ‘좋아요, 하세요.’라고 합니다. 제가 속으로 ‘참, 교회를 도와서 열심히 봉사하려고 하시는구나.’라고 생각하는데, 그 사람은 실지로 자신이 독서대에 섰을 때, ‘모든 사람이 나를 바라봤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장상에게 순명한다. 그렇지만, 사랑으로 순명하는 것이 아니고, 벌받는 것이 두려워서 순명한다. 여러분들은 물론 그렇지 않으시겠지요… 꾸지람 듣는 것이 싫어서, 아니면, 내가 승진되고 싶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지막 때에 갔을 때에 우리가 한 모든 행위들이 정말 좋은 의도로 했는지 다 나타내 보여지기 때문에 그 때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항상, 매 순간 우리 마음을 정화시켜서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정말 순수한 의도로 하는 것이 되도록 노력해야 된다.’

다니엘 신부님이 기타를 치는데, ‘제가 음악 봉사를 도와줄 수 있을까요?’라고 했을때, 요셉 신부님이 ‘좋아요. 우리가 음악봉사를 하는데 좀 도와주세요.’라고 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다니엘 신부님은 사람들이 자신의 노래를 들어 줄 때, 기분이 좋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 아버지가 받으셔야 될 영광을 조금 가져다가 자기에게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대회입니다.

질문 있으시면 하십시오. 무엇을 좀 더 분명하게 설명해 주었으면 하시는 분 있으신가요? 어떤 분들은 깊게 명상속에 빠지신 것 같은데요, 흥미가 있으신가요?

질문 : 신부님, 예수님께서 우리의 부족했던 순간들을 메꾸어 주신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지금 이순간 채워주시는 것인지, 아니면 2000년 전에 사셨던 당신의 삶을 통해 미리 채워주신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대답 : 예수님께서 지상에 사시는 그 매 순간마다 우리 모든 온 인류가 완벽한 삶을 살기를 원하시고 이렇게 살 수 있도록 보상을 해 주신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시, 공의 제약이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에 지금 자매님에게 대답해 드릴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2000년 전에도 하셨고, 지금도 하시고, 앞으로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 성령대회에 있습니다.  그저께 저의 체험담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이 어떻게 우리 위에 내려왔는지 느꼈던 것을 말씀 드렸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 예언자가 ‘어느 날, 하느님의 영광이 온 땅에 내려온다.’라는 예언 말씀을 하셨는지에 대해서 나누었습니다.
이사야서 40장 5절의 말씀입니다. ‘야훼의 영광이 나타나리니, 모든 사람이 그 영화를 뵈리라. 야훼께서 친히 이렇게 약속하셨다.’하까서 2장 7절, 하바꾹 2장 14절도 보실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현존과 하느님의 영광은 같은 것입니다.

우리 본당에서는 매 금요일마다 성체조배를 합니다.
400여명의 젊은이들이 음악을 하면서 성전으로 모입니다. 아주 아름답습니다.
물론 우리가 계속 성체조배 시간을 가졌지만, 제가 불세례를 받은 후에는 뭔가 다른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 젊은이들이 뭔가 다른 것을 체험했습니다. 공기 중에 무엇인가가 있는 것을 느낍니다. 불이 내려 오는 것을 느끼고, 기름이 부어지는 것을 느끼고 하느님의 현존이 계시는 것을 실지로 피부로 느끼게 됩니다. 하느님의 능력을 느낍니다. 그리고 많은 개종, 회심, 치유가 일어납니다.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께서 옛날보다 어떻게 더 강하게 현존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현존만 있었고, 옛날에는 영광이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있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세상이 끝날 때에 가서야만 우리가 영광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나자렛에 가셨었지만, 사람들에게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기적을 이룰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자렛에 가셨을 때, 예수님의 현존을 그들 안에 모시고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에제키엘 예언자가 하느님의 영광이 사람들의 죄로 인해 성전에서 떠나는 것을 얼마나 많이 보았습니까? 거기에는 계약 궤가 모셔져 있었고, 하느님께서 거기 현존하셨었지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영광을 가지고 떠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을 찾아야만 합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체험해야만 합니다.
하바꾹서에 보면, 하느님 아버지께서 ‘어느날엔가 온 땅이 하느님의 영광을 알게 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디모테오 2서 1장 6절의 말씀에 ‘그래서 나는 다시 그대를 깨우쳐 줍니다. 내가 그대에게 안수했을 때에 하느님께서 그대에게 주신 그 은총의 선물을 생생하게 간직하시오.’ 라고 나와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영문 성서에는‘내가 여러분에게 상기하는 건데, 하느님의 선물을 흔들어서 일으켜 세우시오.’라고 씌어져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다 사그라져 없어져 가는 불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불쏘시개 같은 것으로 불씨가 죽지 않도록 쑤셔줍니다.
그리고 ‘후’하고 입김을 불면 불이 다시 살아 일어납니다. 거기에 다시 종이와 나무와 잎을 넣고 바람을 불어 주면 불이 완벽하게 다시 살아납니다.

바오로 사도께서 젊은 디모테오에게 말합니다.
‘너는 성령세례를 받았다. 그런데 그 불이 차가워졌다. 그래서 이제는 그 불을 일으켜야만 한다. 불을 더 지펴서 강해지게 해야 한다. 불을 다시 지펴라. 불을 다시 지펴라.’

6월 1일입니다. 예수성심의 달입니다.
우리가 이제 예수성심 안으로 들어갑시다. ‘주님, 당신의 입김을 우리에게 불어 주세요. 우리 안에 있는 불을 지펴주세요. 아버지의 영광을 우리에게 다시 한 번 내려 주세요. 저에게 그 첫사랑을 다시 일으켜 주세요.’

결혼하신 분들, 한국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미국에서는 두 번째 밀월 여행을 떠나는 게 참 좋다고 얘기를 합니다. 불길을 다시 한 번 지피기 위해서…
이런 것은 우리 영적인 종교적인 삶 안에서도 일어납니다. 우리가 할 일이 많아서 묶여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지고 있던 불을 잃어버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전에 예수님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봤던 그런 모든 것이 없어지게 됩니다. 내 죄의 먼지가 그걸 가리어 줍니다. 결혼식 때 입었던 웨딩복의 먼지를 터는 것처럼 …
‘내 몸도 내 남편을 위해 옛날의 날씬했던 몸으로 되돌릴꺼야.’

이제 눈을 감고 손을 앞으로 펴십시오. 예수님의 성심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제가 여러분을 위해서 대신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영적인 눈으로 예수님의 성심이 여러분 바로 앞에 서 계신 것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성심이 열려 있고, 그 안에 있는 불을 여러분은 볼 수 있습니다.‘나의 딸아, 나의 아들아, 내 성심 안으로 들어오너라. 내가 너를 기다리고 있다. 내 성심으로 오너라.’알렐루야~~~~~

성 바오로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제가 더 드릴 말씀은 많지 않습니다.  
로마서 8장 5에서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들은 육체적인 것에 마음을 쓰고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영적인 것에 마음을 씁니다. 육체적인 것에 마음을 쓰면 죽음이 오고, 영적인 것에 마음을 쓰면, 생명과 평화가 옵니다. 육체적인 것에 마음을 쓰는 사람은 하느님의 율법에 복종하지도 않고 또 복종할 수도 없기 때문에 하느님의 원수가 되고 맙니다.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들은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사실 하느님의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면 여러분은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성령을 모시지 못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비록 여러분의 몸은 육체 때문에 죽었을지라도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여러분은 이미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기 때문에 여러분의 영은 살아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분의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살아계신 당신의 성령을 시켜 여러분의 죽을 몸까지도 살려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우리는 과연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육체에 빚을 진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우리는 육체를 따라 살 의무는 없습니다. 육체를 따라 살면 여러분은 죽-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힘으로 육체의 악한 행실을 죽이면 삽니다.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이 받은 성령은 여러분을 다시 노예로 만들어서 공포에 몰아넣으시는 분이 아니라, 여러분을 하느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성령에 힘입어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바로 그 성령께서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명해 주십니다. 또 우리의 마음 속에도 그러한 확신이 있습니다. 자녀가 되면 또한 상속자도 되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하느님의 상속자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을 받을 사람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고 있으니, 영광도 그와 함께 받을 것이 아닙니까?’라고 말합니다.

주님으로부터 오는 정말 풍성한 말씀입니다. 일주일을 지내면서 묵상할 수도 있는 말씀들입니다. 우리가 이제 성령강림절이 오려면 3일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마지막으로 맞는 성령강림절인지도 모릅니다.
작년에 하느님 아버지께서 캐나다에 있는 멜 빈 신부님에게 ‘다가오는 오순절을 열정을 가지고 맞이하여라.’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 아버지께서 천국에서 불을 내려주실 것이기 때문에…
제가 여러분들께 고려해 보라고 청하고 싶습니다. 지금 읽어드린 로마서의 구절을 적어도 이번 성령강림절이 올 때까지 매일매일 읽으시기를 청합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은 영 안에 삽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거룩한 기쁨이 표출되는 것, 그것을 넘어서서 우리 마음 속에 성인, 성녀가 되고자 하는 깊은 마음의 변화가 있습니다.
로마서 12장, 고린토 1서 13장, 필립비서 2장 말씀들을 묵상해 보십시오.
시간이 더 있다면 성덕, 미덕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좋겠는데, 로마서 12장 8절에 ‘우리의 사랑이 완전히 신중한 것이어야 된다.’라는 것,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로마서 13장 10절에 ‘서로서로 그리스도인으로서 따뜻하게 사랑하십시오.’라고 씌어 있습니다. 많이 나오지요?

예수님께서 루이사 피카레타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당신 교회에 새로운 영성, 새로운 단계의 영성을 부어주고 있지만, 우리가 새로운 거룩함을 살도록 부름을 받지만, 그것은 신적인 거룩함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적인 거룩함도 살아야만 합니다. 루이사 피카레타의 영적 고해 사제 헤네버드 프란차께서 ‘앞으로 오는 미래의 성인, 성녀들은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살아갈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미덕과 성덕을 영웅적으로 잘 다룰 것이다.’라고…

예수님께서 오하이오주의 클리벨란에 나타나셔서 100개가 넘는 성덕에 대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지난 1년 반 동안 특히 영적으로 작은 자 되는 것에 대한 가르침을 계속 주고 계십니다. 영적으로 작은 자 된다는 것은 다른 미덕과 성덕이 합해져서 복합적으로 가질 수 있는 덕입니다. 그리고 천국에서 모린 자매에게 기도를 받아 쓰라고 하셔서 겸손함, 의탁함, 영적으로 작은자 됨에 대한 기도를 받아 썼습니다. 저기 계시는 요한 신부님을 바라보는 것이 참 즐겁습니다. 왜냐하면 아주 겸손하시고,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와서 참여하시는 아주 매력적인 사제이십니다.

소화 데레사 성녀의 영적으로 작음, 겸손함, 단순함, 신뢰, 복잡하지 않은 것, 어린 아이 같은 것, 순명하는 것, 신중하고 성실한 것, 이것이 다 합해져서 영적으로 작은 자 되는 성덕을 이룹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가 그렇게 되고자 노력하는 것을 보신다면 은총을 가져다가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낙심은 마귀가 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인이라는 뜻은 ‘모든 죄인들 중 계속 앞으로 전진하는 죄인’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포기한다고 타올을 던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만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계속 선한 싸움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대한 성인, 성녀로 만들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면서 우리는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를 성인, 성녀로 만드는 것이 주님께는 큰 기쁨이 됩니다.

실로 저는 아무것도 아니라서 누구에게 이렇게 저렇게 얘기할 처지가 못되지만, 서울 성령쇄신 봉사회에 계신 분들께 제가 권고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데살로니카 1서 5장 16절의 말씀입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늘 기도하십시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보여주신 하느님의 뜻입니다. 성령의 불을 끄지 말고, 성령의 감도를 받아 전하는 말을 멸시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을 시험해 보고 좋은 것을 꼭 붙드십시오. 여러분 중에 악을 악으로 갚는 사람이 하나도 없도록 하고, 언제나 서로 남에게 선을 행하도록 힘쓰십시오. 또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하십시오.’

우리가 심령기도의 은사를 받았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오상을 받았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우리 마음에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