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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세월호에서 참사(慘死) 당한 이들을 위한

십자가의 길

 

 

시작기도

 

주님!
성목요일 전날, 믿기지 않는 세월호 사고가 진도 앞바다에서 일어났습니다.
구조 될 줄 알았습니다. 어디 먼 망망대해도 아니고 우리나라 서남쪽 바다에서 침몰한 배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며, 당신께 살려주십사고 매달리지도 않았습니다. 현지의 상황을 T.V와 인터넷만 보고 들으며 무력감이 우울로 바뀔 때 까지도 당신께 자비를 간구하지 않았습니다. 인명을 구조해야하는 다급한 상황에서 무한의 능력을 지니신 창조주 하느님께 의탁하며 기도하지 못한 이 유약한 신앙을 고백하며 비오니 당신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주님, 삼백여명이 넘는 주검, 순수한 청소년들의 희생이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부정, 불의, 위장된 악, 은폐되었던 죄악을 빛 앞으로 끌어냈습니다. 빛이 어둠을 이길 수 없다는 진리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도록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을 걷고자 하오니 동행하여 주시며 희생자들의 영혼에 평화의 안식을 주시고 자식을 잃은 모든 부모들에게 위로와 힘을 주소서. 아울러 물밑의 주검을 수습하지 못하여 애간장이 다 녹은 가족들의 고통을 기억하여주시고 어서 빨리 이 사건의 전모가 밝혀져 우리 사회의 진실과 정의가 자리하게 하여 주소서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제1처 예수님, 사형선고 받으심을 묵상합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세월호 침몰 후, 이렇듯 오랜 나날이 지나도록 왜 이 사건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아 기가 막히고 답답합니다. 왜냐고 물을 곳이 이 나라 안에는 없습니다. 출항을 결정 내렸지만 그 누구의 결정인지도 모르고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이상한 현상으로 두 번 세 번 사형선고가 내려집니다.

주님, 무고한 청소년들과 일반승객이 예수님처럼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제2처 예수님, 십자가 지심을 묵상합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구조 될 수 있는 기회가 세 차례나 있었으나 움직이지 말라는 선내 방송이 승객들을 선실 안에서 꼼짝 못하게 하였습니다. 구조하기 위한 방송입니까? 수장하기 위한 방송입니까? 생명이 담보로 잡혔습니다. 인명은 아랑곳하지 않고 선체 보험금에 영혼을 빼앗기고, 인간임을 포기한 이들에 의해 삼백여명의 청소년들과 일반승객이 십자가를 지고 있습니다.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제3처 예수님, 첫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기우는 배로 선실의 기물들이 객실 안에 밀리며, 선실에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으로 미처 피하지 못한 승객들이 다쳤습니다. 비명이 들리고 뼈가 부러지고 피가 솟습니다. 선실 밖에 사람이 없어 출구를 여는 것이 어렵고 도움을 청할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입니다. 삼백여명의 청소년들과 일반승객이 예수님처럼 무방비로 쓰러졌습니다.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제4처 예수님, 성모님 만나심을 묵상합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어느새 선실에 물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막을 도리도 피할 도리도 없는 순간에 어머니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뒤이어 가족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기억의 밑바닥에서 생각지도 못한 지나간 어느 순간, 어느 상황들이 뒤엉켜 떠오릅니다.

미안했던 일, 섭섭했던 일, 잘못했던 일, 고마웠던 일, 자랑스러웠던 일, 후회가 되는 일.... “엄마, 사랑해! 엄마, 미안해! ” “ 아빠, 미안해요! 아빠, 사랑해요!”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제5처 예수님, 키레네 사람 시몬의 도움 받으심을 묵상합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헬기소리를 들으며, 배 밖에 사람들의 움직임을 느끼며 지금이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구조해 주리라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승객 중 누군가가 구조되리란 상상은 모든 것에 감사를 느끼게 합니다. 구명조끼를 벗어주고 입혀주던 친구들의 모습도 떠오릅니다. 스마트폰으로 서로의 상황을 알려주고 사진을 찍던 친구들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며 구조를 기다리던 순간에 ‘사랑’의 실체를 보았습니다. “아! 하느님, 감사드립니다.”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제6처 베로니카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 드림을 묵상합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선실에서 함께 있는 이들이 있기에 희망이 있었습니다. 목 밑까지 차오르는 바닷물에 고개를 움직일 수도 없어 서로 이름을 부르며 현재의 상황을 확인하지만 두려움에 온 몸이 차가와 짐을 느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무고한 사람들을 버려두지 않으신다는 믿음도 있었습니다. 작은 선실 창을 통해 구조대가 배 가까이 오는 것도 보았어요.

“하느님! 저희를 구해줄 사람들을 보내주셨지요? 엄마! 아빠! 선생님~!”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제7처 예수님, 두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이를 어떡합니까? 배가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집니다. 바닷물을 먹지 않으려고 애를 쓸수록 거센 두려움이 일어납니다.

“엄마, 엄마, 아빠! 아버지!아~ 하느님! 어디 계셔요? 살려 주셔요!”

 

바닷물 소용돌이와 수압으로 배 밖에서의 구조 작업은 쉽지 않다는 무언의 판단을 하게 되는 것이 괴롭습니다. 모든 것이 느리게 진행되고 우왕좌왕하고 체계적인 시스템 속의 구조작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무엇이 구조대의 발목을 잡고 있는 걸까요? 있어서는 안 될, 생명을 돈과 맞바꾼 황금만능 가치관으로 인한 안전 불감의 사람들, 안전 불감의 공직자들의 나라입니다.

뭍에서 정신없이 달려온 가족들은 애간장이 탑니다.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제8처 예수님, 예루살렘 여인들 위로하심을 묵상합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팽목항에서 발을 동동 거리며 타들어가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미친 듯이 자녀를 찾아 헤매는 어머니, 아버지... 형제자매들... 차가운 물속에 수장된 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무력감에 가슴이 터져 타들어 가는 고통을 아십니까? 미칠 지경입니다. 여기저기서 잠수부들이 현장으로 오고 있다는 풍문이 구원의 소식입니다.

무력감에 터져나가는 마음 한 구석에서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은 더욱 간절히 타오릅니다.

“여인아, 네 아이는 나와 함께 있다. 서러워마라, 아파하지 마라!”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제9처 예수님, 세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진도 앞바다. 고등어배, 오징어배를 밤바다에 띄워 놓고 살아 있어 달라고 목 놓아 외쳤습니다. 어둠이 무겁게 가라앉은 바다는 그 어느 것도 내어 놓지 않고 삼키고 있었습니다. ‘돈의 신’에게 매수당한 이기심과 탐욕으로 굳어진 어른들의 관행, 늑장 대행, 불의가 패권을 잡고 있는 상황입니다.

 

“ 쓰러뜨릴 때, 저항하지 않고 쓰러진 너희는 나를 닮아 있다!

내가 세상에 구원을 가져오는 통로가 되었듯이 너희는 새로운 사회형성을 위해 쓰러졌다는 것을 기억해라!”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제10처 예수님, 옷 벗김 당하심을 묵상합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더 이상의 생존자를 구할 수 없는 상황이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아직도 우왕좌왕하는 정부의 구조 시스템은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주소입니다. 세계 10위 안에 드는 경제력을 지닌 나라라는 평가는 썩을 대로 썩어 회복력을 잃은 정치구조가 내걸은 무의미한 현수막입니다.

 

“세상에서 얻은 옷이 벗겨질 때 하느님의 영광이 준비되었다.

‘돈의 신’이 무력하다는 것을 알리려 모든 구조 시스템의 기능이 마비되었다는 것을 보느냐?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침묵하는 너희는 ‘천주의 어린양 ~ ’”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제11처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힘 당하심을 묵상합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배에서 꺼내온 ‘주검’이 팽목항으로 들어왔습니다. 이 ‘주검’도 누가 인양하느냐는 것이 쟁점이 되며 명예, 권력으로 저울질 당하고 있습니다.

무지막지한 대못이 실종자 부모, 형제, 친지의 가슴에 박힙니다. 살아서 자녀를 구하지 못한 채 남의 손에서 ‘주검’을 받아 안은 부모들은 억장이 무너집니다.

 

“아들아, 딸아! 나와 함께 너희도 십자가에 못 박혔음을 내 잊지 않겠다!

오늘, 너희 자녀들이 나와 함께 하느님 나라에 들어 갈 것이다”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제12처 예수님,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을 묵상합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200구가 넘는 실종자의 시신이 팽목항으로 들어와 그 일대는 죽음의 나라입니다. ‘시신’을 끌어안고 실신하는 부모들과 소리쳐 울지 못하는 이들의 고통이 온 나라를 뒤덮었습니다. 이 어린 생명들과 무고한 이들이 ‘두려움’속에서 생을 마쳤다는 사실에 환장할 지경입니다.

고통을 뚫고 가려면 미치지 않고는 안 될 것 같은데 도리어 냉정해지는 ‘나’ 아닌 ‘나’를 봅니다.

 

‘주검’이 넘쳐나는 항구에 어디서 모여 왔는지 숱한 봉사자들이 청소하고 밥하고

빨래하고...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숱한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이 떠오르는 것이 유가족들에게 송구스럽습니다.

 

< 무릎을 꿇고 잠시 침묵 ... 그 후에 ‘주님의 기도’>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제13처 예수님, 십자가에서 내리워짐을 묵상합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살아있기를 그토록 고대했건만 ‘주검’으로 돌아 온 자녀를 만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내가 ‘나’를 버리고 싶습니다.

 

아무도 그를 알아볼 수 없게 되어도 어머니는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습니다.

차가운 시신을 끌어안고 있는 당신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하염없이 넋을 잃고 흰 천에 싸여 있는 시신을 부둥켜안고 있는 당신은

‘천주의 어머니 마리아‘이십니다.

 

< 잠시 침묵... 그 후에 ‘성모송’>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제14처 예수님, 무덤에 묻히심을 묵상합시다.

-.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부모가 자녀를 하느님께 되돌려 떠나보내고 살아있다는 자체는 ‘사랑의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살아있어야 합니다. 세월호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는 과정을 낱낱이 지켜보며 또 다시 이런 사건이, 이 나라 안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내 자녀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생(生)으로 죽은 목숨을 지니고 있던 유가족이 ‘주검’을 끌어안고 먼 길 돌아 집에 왔습니다. 영정을 걸고 자녀가 생전에 좋아 한 것들을 정성스레 차려 놓은 뒤 추억 속의 자녀를 만났습니다.

자녀가 끝으로 원하는 세상 마지막 길은 학교로 가는 길입니다. 영정이 교실로 들어가 늘 앉아 있던 책상위에 조화(弔花)가 놓여 있는 것을 봅니다.

“다 이루었다!”

주님께서 미리 보셨던 구원을 ‘사랑의 힘’을 지닌 이들이 볼 것입니다.

 

<잠시 침묵... 그 후에 ‘영광송’>

 

 

마침기도

 

사랑의 하느님,
당신께서 함께 걸어주신 이 십자가의 길이 모든 생명은 고귀하다는 것,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의 힘을 길러주는 은총의 길임을 알게 하여 주셨습니다.

 

구원의 하느님,
세월호 참사로 고통당하는 모든 이들을 위로하여 주시고
새 힘을 불어 넣어주시어 일어서게 하여 주십시오.
많은 이들이 서로 돕고 협력하여 그들이 희망을 지니고 나아갈 수 있게 이끌어 주십시오.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나야 이 깊은 상처가 치유되고 자유로워질지는 모르지만
당신의 자애와 은총으로 회생시켜 주시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생명경시 풍조의 사회적 흐름에서 비롯됨을 알게 된 온 국민이
우리 사회의 물질중심주의 가치관을 ‘인간중심주의’로 바로 잡아 나가는
전환점으로 삼게 하여 주십시오.

또한 저희들이 자기중심의 이기심과 감정에 휘둘리는 존재가 아님을
깨닫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하여 당신 계획 속에 있는 진정한 자신을
새롭게 인식하여 우리사회의 치부와 병폐, 안전 불감증을 직시하고 정화하며
전환시키는 도구가 되게 하여주십시오.
그리하여 기쁜 소식을 전하는 당신의 도구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도드립니다. 아 멘!

 

노틀담 수녀회 / 마리 래티치아 수녀 S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