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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대축일

   

오늘 성모님의 옆에 계신 성령님

이 땅에 내려오신 성령강림대축일은 교회의 생일입니다.

 

본당 평협회 임원들에게 피정 중에 성령이 무엇입니까? 

성부는 아버지이시고, 성자는 아들이라면 성령이 누구십니까?

물었더니 서로 눈치만 보고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을 잘 알겠는데/ 성부와 성자는 알겠는데/ 성령의 개념은

머리에 잘 잡히지 않았던 겁니다.

 

성령은 사실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함께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다!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함께 뿜어 나오는 사랑이요, 힘입니다.

‘파워’  하느님의 힘이~~ 성자의 힘이 성령입니다.

 

하느님을 하느님답게 하는 힘, 성자를 성자답게 하는 힘이 성령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빼 버리면 하느님은 빈껍데기일 뿐입니다.

 

사제를 사제답게 하는 힘이 성령입니다.

수녀를 수녀답게 하는 힘이 성령입니다.

신자를 신자답게 하는 힘이 성령입니다.

봉사자들을 봉사자답게 하는 힘이 바로 성령입니다.

 

우리 역시 성령이 빠지면 허수아비신자에 불과합니다.

주일을 잘 지키면서 나름대로 봉사를 열심히 하는 듯 하지만 속은

알맹이가 없는 빈 깡통과 같은 신자들이 많습니다.

아무리 기도하고 봉사해도 속이 빈 깡통과 같고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입니다.

아무런 기쁨이 없습니다.

어느 직책을 맡으면 본당신부님  명령이니까/ 그냥  자기 자신과의 약속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책 잡히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그 일을 맡고 있는 동안은  합니다.

그러나 그 일이 성령과 함께 하시지 않을 때는 항상 분열이 일어나고

봉사를 하고도 누구에겐가 자기자신을 알아달라고 늘 표현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은 그야말로 오합지졸이었습니다.

무식한 겁쟁이었고, 교회를 이끌면서 복음을 전파할 능력이

전혀 없었던 것이 열두 사도들이었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봤을 때 예수님의 3년 동안의 그 전교생활은

이 겁쟁이 제자들로 인하여 다 무너지는 듯 하였습니다.

 

그리고 열 두 사도들은 다 각각 딴 마음을 먹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먹고 살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주님 승천 하신 뒤에도 제자들은 황량한 벌판에 버려진 고아와 같이 무서워

다락방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그들이 있는 집안을 가득 히 채우며 혀 같은 것이 나타나

불길처럼 갈라지며 각 사람에게 내렸습니다.

뭐가 내린 겁니까?

성령을 받자 제자들은 뒤집어지고 세상이 뒤집어졌습니다.

 

그 바보 같던 제자들이 수많은 외국인들 앞에서 여러 가지 외국어로

사람들에게 설교를 했습니다.

로마의 권력과 그 세력들이 살벌한데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이 엄청난 사건이 벌어진 겁니다.

 

그뿐만 아니라 말 한마디로 앉은뱅이를 고쳐주고  여러 가지 기적을

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다 깜짝 놀랐습니다.

 

성령은 인간을 변화시킵니다.

성령은 가정을 변화시킵니다.

성령은 교회를 변화시킵니다.

성령은 사제 수도자들을 변화시킵니다.

 

성령에 취하면 아무리 육신이 힘들어도 하느님이 일을 합니다.

 

무당이 되는 것을, 무당이 될 때 하는 굿을 ‘내림굿’이라고 합니다.

무당들은 내림굿을 통해서 신접현상이 일어납니다.

 

우리 천주교신자들도 세례 받을 때 성령을 받습니다.

 

무당들에게는 마귀의 영이 내리지만~~

우리 천주교신자들은 세례 받을 때 하느님의 영을 받습니다.

 

마귀들은 무당에게 들어가서 초능력을 일으켜 서슬이 시퍼런 작두날을 빼 가지고 뺨때기에 썩~~썩 문질러도 베어지지 않습니다.

허벅지를 썩썩 문질러도 그 시퍼런 작두날이 살을 자르지 못합니다.

악령의 힘을 빌어서 엄청난 능력을 냅니다.

 

그러나 악령과 비교도 되지 않는 성령을 받은 천주교신자들은~~

 

우리 신자들이 무당만도 못하답니까?

 

무당은 악령의 힘을 빌어서 그  엄청난 힘을 보이는 데

우리 천주교 신자들은 내 안에 성령이 계시는 것조차도 모릅니다.

 

저는 피정 들어가기 전에 온 몸이 파김치가 되어 있는 상태가 많습니다.

저도 인간이라 쉬어야 하는 데 쉬지 못합니다.

차를 타고 가면서 그래도 6~·7시간을 떠들어야 하는데 피정 중에 떠들수가 있을까!

혹시 내가 피정 중에 쓰러지지 않을까!

그런 걱정을 하면서 그래도 마이크를 잡습니다.

 마이크를 잡고 성령께 도움을 청합니다.

“성령님, 너무너무 피곤하고 지쳐 있지만 그래도 여기 와 있는 수 백명이

바로 사제의 입을 통해 하느님을 알려고 왔습니다.

이 지친 몸에 들어오셔서 사제의 입술을 갖고 오늘 저를 성령의 사람으로

당신께서 오늘 하루 피정 해주십시오!"

 

그러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7시간을 줄기차게 떠듭니다.

그때 하는 피정지도는 사람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사제와 함께 하는 피정지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의 어줍잖은 말장난 가지고는 영적변화가 불가능하지만 성령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그 피정 중에 치유가 일어나고 변화가 일어나고 피정에 들어올 때 얼굴과 나갈 때의 얼굴이 다릅니다.

 

 

세상이 다 뒤집어져 버린 겁니다.

 

☆오늘날에도 성령의 은혜가 절실하게 요청되는 시기입니다.

 

많은 신자들이 신앙의 기쁨을 잃고 형식적으로 그저 끌려 다닐 뿐입니다.

신앙을 통해 오는 은혜의 맛을 전혀 모르고 살아갑니다.

기도하는 신자보다는 기도하지 않는 신자들이 훨씬 많고 기도도

너무나 형식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태반입니다.

 

성령 안에 사는 사람이 한 사람만  있어도 가정이 달라집니다.

성령 안에 사는 사람이 하나만  있어도 구역이 달라집니다.

성령 안에 사는 사람이 하나만  있어도 공소가 달라집니다.

 

제가 어느 시골 공소에 있을 때 그 회장님은 참으로 열심한 회장님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무당동네라고 이름 붙은 그 동네에 그 회장님은 신부님에게

"방 하 얻어주시면 무당동네를 천주교 신자골로 만들겠습니다. "

그 회장님은 무당들의 박해를 받아 가면서 공소에서 기도하면서 하나씩 둘 씩

하느님의 힘이 잡신의 힘보다 크다는 것을 무당들에게 보여 줬고 무당들은

그 회장님의 강한 성령의 힘 때문에 하나 둘씩 떠나기 시작했고

떠나가는 무당들을 보면서 천주님이 귀신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깨닫고

천주교신자로 돌아와 지금은 동네 주민의 90%가 천주교신자입니다.

이렇게 성령이 충만한 공소회장님 하나가 온 동네를 하느님나라로 만듭니다.

 

성령의 뜨거운 체험이 없으면 사제, 수도자도 직업인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사제는 분명히 직업인이 아니지만/ 성령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미사 드리는 기계/ 성사 주는 기계/ 그야말로 직업이 되고 맙니다.

 

신자들도 성령의 뜨거운 체험이 없으면 세례 받을 때 사제직, 예언직, 왕직이라고 하는 이 고귀한 품위를 잃어버리고 허수아비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은 우리들에게 아홉 개의 은사와 아홉 개의 열매를 주십니다.

 

그 많은 은사와 열매를 주시는 목적은 교회 안에서 효과적으로 봉사하기 위함입니다.

아홉 개의 은사와 아홉 개의 열매는 성령의 선물이지만 은사를 받았다고 해서 다 경건한 신앙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열매를 맺어야 됩니다.

그것이 마치 인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권력을 잡으면 그 권력을 그릇되게 남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삶 속에서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절제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이러한 열매가 없는 것은/ 이러한 열매 없이 사용하는 은사는/ 요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령께 이 험한 세상에서 신앙을 잃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기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우리들은 성령께 도움을 청하는 성령송가를 바치셔야 합니다.

 

죽음의 골짜기를 건널 때마다 중병에 걸릴 때마다 성령께 도움을 청하도록 합시다..

고통스럽고 힘든 십자가가 내 어깨를 짓누를 때마다 성령께 도움을 청하도록 합시다.

전례 때마다 미사시작 할 때마다 성령께 분심 없이 오로지 이 미사가 내 생애의 마지막인 것처럼 이 자리에 머물게 해달라고 성령께 도움을 청하십시오.

 

교우 여러분들 축원합니다.

☆여러분은 성령이 머무시는 궁전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교우가정과 교회 안에 성령께서 어둠을 몰아내고 성령 충만한 교회로 거듭 나기를 바랍니다.

 

이냐시오 드 라따꾸이에 대주교께서 하신

<성령 그 생명의 의미> 를 낭독하는 것으로 성령강림대축일 강론을 끝내고자 합니다.

 

성령이 아니 계시다면 하느님은 멀리만 계신다.

성령이 아니 계시다면 그리스도는 과거에 머무신다.

성령이 아니 계시다면 복음은 죽은 문자에 불과하다.

성령이 아니 계시다면 교회란 한낱 조직에 불과하다.

성령이 아니 계시다면 권위란 한낱 지배하는 것일 뿐

성령이 아니 계시다면 선교란 한낱 선전광고에 불과하고

성령이 아니 계시다면 전례란 한낱 과거의 회상 일 뿐

성령이 아니 계시다면 그리스도인의 행위는 노예들의 윤리에 불과하다.

그러나 성령 안에 우주는 온통 잠을 깨고 왕국을 낳는 산고로 신음하고 있다.

성령이 계시면 부활하신 하느님 여기 계시고

복음은 찬란한 생명력을 내뿜고

교회는 성삼위와의 통교를 의미하고

권위는 해방자의 섬김이 되며

선교는 성령강림의 축제가 된다.

전례와 그리고 미사는 하느님왕국에 미리 참여함이 되고

인간의 행위는 성령으로 하느님으로 가득 차리라! 아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