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 베드로
聖 베드로 (St. Peter)
축일 6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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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 베드로(Πέτρος, petros) 또는 페트루스(? ~ 64년)는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제자들 가운데 수제자였던 사람이다. 열두 제자중 한사람이던 안드레아와 형제 관계다. 원래 이름은 시몬(Simon)이라 하며(마태 4,18; 마르 3,16; 루카 5,8; 요한 1,40), 베드로는 예수가 지어 준 이름으로서, 그 뜻은 바위라는 의미의 아람어 케파(kefa)를 고대 그리스어로 Κηφας(kephas)로 소리나는 대로 적은 후, 낱말 뜻을 고대 그리스어 페트로스(πέτρος, Petros; 라틴어 Petrus)로 풀이한 것이다(요한 1, 41).

그리스도의 승천 후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교회의 새로운 지도자가 되었으며 헤로데 아그리파 1세에게 붙들렸다가 도망하여 소아시아 및 안티오키아에서 전도하였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로마에서 잠깐 동안 교회를 주재하였으나 네로 황제의 기독교 탄압 아래 거꾸로 된 십자가에 못박혀 매달리다 순교하였다고 전해진다.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 재대 아래에 그의 무덤이 있다.

베드로는 예수로부터 천국의 열쇠를 부여받았기 때문에(마르 16,19), 로마 가톨릭과 동방 정교회에서는 그를 초대 교황으로 여기고 있으며, 이 제도를 현재까지 유지해 오고 있다. 그 예로, 현재의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베드로의 264번째 후계자로 여겨지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성인. 로마 가톨릭에 의해 지정된 축일은 바보로와 같은 날짜인 6월 29일이다. 미술작품에서는 흔히 키가 작고 고수머리에 짧은 수염을 지녔으며, 얼굴에는 주름이 많은 남자로 묘사된다.

행적

베드로는 요르단 강에서 그리 멀지 않은 갈릴래아 호수의 북쪽 연안에 있는 배쌔다(베싸이다)라는 지방에서 태어났다. 베드로의 아버지 이름은 요한이었고, 베드로의 본래 이름은 시몬이었다. 그는 동생 안드레아와 제베대오의 두 아들인 야고보, 요한과 함께 어부로 살았다. 그 당시 성서의 배경지식에 대한 이해가 없는 이들은 사도 베드로가 별볼일 없는 어부라고 착각하지만, 로마 제국 시대 당시 어부들은 부자였다. 이는 물고기가 매우 비싼 먹거리였기 때문이다. 베드로의 집으로 추정되는 집터가 넓다는 것도 그가 부자였음을 말해준다. 즉 어부라는 직업을 포기하고 예수를 따른 베드로의 결심은 자신의 부(富)를 포기한 용기있는 행동이었다.

예수가 사역을 시작했을 무렵 베드로는 이미 결혼해서 가파르나움에서 장모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그러나 루카 복음서에 따르면, 베드로는 “내가 너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루카 5,10)는 예수의 말에 따라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베드로는 예수를 따라 다니며 점차 열두 제자 중 수제자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마태오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가 제자들에게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예수는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나의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수세기에 걸쳐 전해 내려왔고, 베드로 이후의 모든 교황들이 자신들의 수위권을 주장하는 토대가 된다.

초대 교회가 세력을 확장해감에 따라 베드로는 여러 지역으로 선교 여행을 다니며 설교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을 개종시키고, 병자들을 치유하고, 죽은 자를 살렸으며, 레반트 북쪽 지역 곳곳에 생겨나기 시작한 기독교 공동체들을 도왔다. 그러나 그때 이후의 베드로의 활동에 관해서는 남아 있는 기록이 별로 없다. 다만 전승에 따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베드로는 43년에 유대의 왕인 헤로데 아그리파 1세에 의해 체포되었으나 기적적으로 감옥에서 탈출했다. 49년에는 예루살렘에서 예루살렘 공의회를 주재하여 이방인들을 굳이 유대교 규정에 따라 할례를 요구하지 않고 교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그 후 그는 안티오키아로 가서 스스로 최초의 주교라고 선포했다.

그 후 베드로는 로마로 갔다. 신약 성서는 이 부분에 관해 언급하지 않았지만 초대 교회 시절의 서술가들은 그가 로마에서 사역을 하다 순교했다고 하나같이 주장한다. 역사가 유세비우스는 베드로가 64년경 로마 황제인 네로의 치세에 처형되었다고 전한다.

베드로의 십자가형 전승에 따르면 베드로는 네로 황제의 박해를 피해 로마를 떠나던 도중 아피아 가도에서 마주 오는 예수를 만났다고 한다. 베드로가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묻자, 예수는 “다시 한 번 십자가를 지러 로마로 가는 길이다”라고 대답했다. 그 즉시 베드로는 발길을 돌려 로마로 돌아가서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했다. 이때 베드로는 특이하게도 자청해서 머리를 아래로 두고 거꾸로 매달려 십자가에서 처형되었다고 전해지는데, 그 이유는 예수와 똑같은 방식으로 죽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한편 베드로는 바오로와 서로 대립하는 관계이면서도 존중하는 관계였다. 유대교의 전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예루살렘 교회와 탈율법적인 성격의 바오로의 기독교 공동체간의 신학 성격의 차이로 대립하는 일도 있었지만, 베드로는 바오로를 ‘우리 형제’라고 불렀으며 바오로가 뛰어난 지식인임을 인정했다.

[쏘스: 백과사전, 웹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