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성 글라라 수녀회 소속인 아일랜드 출신의 브리지 매케나 수녀님의 <기적은 일어난다>라는 책 중의 일부를 발췌한 글입니다. 수녀님은 치유의 은사를 받은 분으로 현재 사제를 위한 피정으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고 계십니다. 

브리지 매케나 수녀님의 <기적은 일어난다>에서 발췌한 다른 글들을 읽으시려면 아래 링크를 누르세요.


- 성체성사안에서 예수께 손대기 http://www.stfccm.org/xe/?mid=board_catholic&page=4&document_srl=651

- 성체조배에 대해 http://www.stfccm.org/xe/?mid=board_catholic&page=4&document_srl=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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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들 가운데서 뽑힌 사제들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극진한 사랑은 너무도 위대하다. 그 분은 모든 방법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마련해 주신다. 그 분은 이 세상에서의 순례의 여정을 살아갈 수 있는 영능(靈能)과 힘을 위한 성사들을 우리에게 주셨다. 


여기에서 칠성사에 대하여 상세히 이야기를 나누기는 불하능하므로 나는 여러분과 함께, 우리 모든 교우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고 역사상 그 어느때보다도 가장 심한 공격을 받고 있는 성사인 신품 성사, 즉 사제직에 대해서 묵상하고자 한다.


사제직이 이렇게 심한 공격을 받고 있는 까닭에 사제직은 교회 역사상의 그 어느때보다도 하느님의 위대하심과 선하심에 대한 우리의 사은(謝恩)에서 우러나오는 격려와 뒷받침을 필요로 하고 있다.


성직자와 평신도-순례의 여정에 있는 사람-인 우리에게 이 신품 성사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위한 당신의 예언자적인 가르침들을 마련하고 완수하시기 위한 하느님의 신실(信實)하심의 또 다른 아름다운 표현이다.


사제직이라는 선물을 통하여 모든 천주교 신자들은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바로 이 신품 성사를 통하여 생명의 양식인 성체를 영할 수가 있는 것이다. 병자 성사와 고해 성사도 신품 성사를 받는 사제를 통하여 받은 것이다.


이러한 특정의 성사, 생명을 주시고 용서하시고 치유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더할 나위 없는 결합의 순간들 이외에도 성직자들은 우리 평신도들을 여러 가지 아름다운 방법으로 감동시킨다. 예를 들면 성직자들은 우리가 슬퍼할 때에 함께 슬퍼해 준다. 우리가 기쁨과 희망에 넘쳐 혼인할 때에도 사제는 함께 기뻐해 준다. 사제는 신부(神父)로서 충고하고 지도하며 격려해 주기 위하여 우리와 함께 한다.


사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다. 사제는 성당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끼치는데, 특히 본당 사제는 매일 교회 안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교회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의 화해를 위해 기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제는 평화와 가난한 사람들과 죄인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가운데에 신앙 공동체 전체를 이끌어 나가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리고 사제들이 공격을 받고 있기 때문에 나는 신품 성사에 대하여 여러분과 함께 묵상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매우 경건한 여인이었던 마더 아그네스 성 글라라 수녀회의 전 총장께서 한 사람의 젊은 수녀인 내게 끼친 영향은 너무나도 컸었고, 내가 그분을 가까이에서 모실 수 있었던 것은 커다란 영광이었다.


마더 아그네스는 사제직에 대하여 커다란 존경심과 사랑을 갖고 계셨다. 마더 아그네스는 커다란 사은지심(謝恩之心)을 갖고 사제직에 대하여 내게 종종 말씀하시곤 하셨다. 이렇게 사제직에 대하여 특별한 경애심을 갖고 계신 마더 아그네스께서 병중일 때에 곁에서 시중을 들어 드리며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동안에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여러 해 뒤에 내게 밭겨 주실 사명, 특히 사제들과 함께 할 나의 사목 활동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시켜 주고 계셨던 것이다.



사제직에 대한 공격


1960년대 초반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로 말미암아 천주교회 안에 많은 변화들이 일어났다. 이 변화들이 사제직에 극적인 영향을 미쳤다. 사제직에 대한 태도 역시 변화되었다. 최근까지만 해도 사제는 대좌(臺座) 위에 올라 있었으며, 우리는 사제를 그곳에 두고 있었는데, 그 까닭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안전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사제가 그 대좌에서 내려오기를 원하지 않았는데, 사제가 대좌에서 내려온다는 것이 평신도들인 우리에게는 커다란 도전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제는 여러 면에서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존재였다. 그는 종종 공동체 안에서 학식을 갖춘 유일한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어떤 곤란한 일이 있을 때면 자동적으로 그를 찾았다. 사람들은 그를 하느님의 사람이요, 택함을 받은 사람으로 알고 믿었다. 최근에 우리는 사제들을 좀더 자주 비판했다. 많은 소란이 있었고 많은 사제가 환속했다. 나 자신도 치유 사목 활동 초기인 1970년대 초반에는 성직자들의 어떤 마음가짐과 의견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인 판단을 하고 있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어느 날 경당에서 나는 주님께 여쭈었다. “주님, 사제들의 어디가 잘못된 것입니까?”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사제들의 어디가 잘못된 것입니까?’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 내가 준 선물 가운데에 한 가지라도 완전치 못한 것이 있었더냐? 너의 삶과 모든 인류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제직 선물에 대해서 너는 무엇을 했으며, 내게 고맙게 여긴 적이 있었느냐?” 그리고 나서 주님께서는 내가 뒷전에 앉아서 사제직에 대해 손가락질이나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드러내 보여주셨다. 실제로 신품 성사 안에서 사제는 하느님께 “예”라고 응답함으로써, 그 사제는 나의 사제가 되고 여러분의 사제가 되며 더 나아가서 모든 사람들의 사제가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감실 위에 나타나는 영상의 연속처럼 보이는 곳으로 나를 인도하셨다. 거기에서 나는 주님의 눈을 통하여 한 사제가 서품되는 것을 보았다. 벽에 걸린 융단을 볼 때에 우리는 예술가의 노고의 완성된 결과만을 본다. 우리는 그 융단을 만드는 데에 들인 모든 노고와 사랑은 보지 못한다. 그러나 융단의 뒤쪽을 살펴보면 우리는 그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만들기 위해 들어갔던 바느질 실들과 한 땀 한 코 마다의 각기 다른 모양과 거기에 쏟아 부은 모든 정성을 볼 수가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 사람의 사제를 바라볼 때에 우리는 그 사제에게서 드러나는 명백한 장점과 약점을 본다. 그러나 우리는 무대 뒤에서 주님께서 사랑과 신실(信實)함으로 그 한 사람의 영혼에 사제 성소를 불어넣어 주시고 서품에 이르기까지 이끌어 주셨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주께서 사제직과 한 사람의 남자가 사제로 서품된다고 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감동적인 장면을 내게 펼쳐서 보여주시는 것을 바라보면서 나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천상에 있는 모든 분들-성모 마리아와 천사들과 모든 성인들-이, 당신의 백성들 가운데에 당신의 현존을 드러내기 위한 영능을 사제들에게 주시기 위하여 모든 시대의 남자들에게 사제 성소를 불어넣어 주시는,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신실하심을 찬미하고 있다고 느꼈다.


이 경험을 통하여 나는 사제직에 대해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신품 성사에 대해서 새로운 사랑과 깊은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 나는 사제직이란 인간적인 수단을 통하여 내가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요, 다른 사람들과 내가 동등해지기 위하여 내가 청구할 수 있는 선물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제직은 평등과는 하등 상관이 없는 것이다. 사제직은 마치 선물과도 같은 것이다. 선물이란 내가 강요하거나 청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선물이란 거저 주어지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이 사제직을 당신의 관대함 때문에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다. 하느님은 이 영능-당신의 영능-을, 즉 생명의 빵이신 당신을 우리에게 먹여 주시기 위하여 신품 성사를 제정하신 것이다.


이렇게 사제직에 대하여 커다른 사은지심을 갖게 되었을 때에 주님께서는 그 날 아침에 당신께서 내가 깨닫기를 바라시는 것에로 나를 이끌어 가셨다. 주께서는 매우 굶주린 한 무리의 사람들을 내게 보여주셨다. 주께서는 “이 사람들이 네게 보이지 않느냐? 그들은 도움을 청하려고 그리고 치유 기도를 받으려고 네게로 온다. 그들이 네게 오는 것은 그들이 굶주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커다란 굶주림을 겪게 될 때가 오고 그들은 생명의 빵을 간절히 구하게 될 것이다.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나서 주께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에 대하여 일별(一瞥)할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 사람들이 사제직으로부터 등을 돌릴 것이며 사제직을 한낱 직업으로 보기 시작하게 되는 것이었다. 주님께서는 사제 성소의 씨를 많은 젊은 남자들의 마음속에 심어 주시는 것을 보여주셨지만 씨가 자양분을 받지 못하여 자라나지 못하고 열매 맺지 못하는 것도 보여주셨다. 


하느님께서는, 사제직을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로 보지 않는 부모들이 그들의 아들이 사제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 때가 오고 있다는 것을 내게 드러내 보여주셨다.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이 세상의 지혜에 뿌리를 내린 이교도적이고 물질적인 환경을 만들어 나가게 될 것이었다. 그 까닭은 하느님으로부터 그들의 마음에 사제 성소의 씨앗을 받은 젊은이들이 응답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씨앗은 싹이 돋아나지 못한 채 그대로 있게 될 것이었다. 젊은이들은 물질주의와 부모의 무관심에 감싸여서 부르심을 듣지 못할 것이었다. 사제 성소는 조금씩조금씩 사제직의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는 곳에서, 천주교 신자들이 사제직을 공격하여 사제직이 무방비 상태에 있게 되는 곳에서 죽어 갈 것이다. 사제 성소가 소멸되는 것은 성소가 은총의 선물로서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그 선물을 거절했기 때문이요, 우리가 그 선물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우리가 물질주의라는 다른 신들을 택하고 종교를 묽게 만들었기 때문인 것이다. 


나는 뒷공론과 비평을 통하여 사제직이 많은 공격을 받게 되리라는 것을 또렷이 깨닫게 되었다. 이 뒷공론과 비평은 불이 난 곳에 기름을 끼얹는 셈인데 몇몇 사제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들만으로도 이미 해로운 일이 일어나고 있다.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사제직의 거룩한 선물을 더욱 파괴하려고 하는 악의 세력의 교묘한 책략에 넘어가 가족, 친구, 친지들에게 나쁜 소문들을 방송하듯이 떠들어 댐으로써 추문을 부채질한다. 천주교 신자들의 이러한 마음가짐은, 자신들이 살아가면서 짓는 죄를 거슬러 투쟁하고 있는 사제들의 어려움을 가중(加重)시킨다. 


나는 주께서 내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것으로 느꼈다. “나는 네가 세상에 나가 내 백성들에게 사제직은 그들을 먹이고 견고하게 해주기 위한 나의 선물이라는 것을 말해 주기 바란다. 나는 내가 뽑아 세운 사제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고 사랑하며 이 성사에 대하여 경의를 표하도록 그들을 네가 불러내 주기를 바란다. 내 백성들이 사제직을 사랑하고 경의를 표하며 감사하게 여기게 될 때에 사제 성소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많아져서 번창하게 될 것이다. 젊은이가 이러한 부르심에 ‘예’라고 응답하는 것은 그들에게 기쁨이 될 것인데, 그 까닭은 그들이 혹한 공동체와 그들의 가족들이 그들을 뒷받침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첫번째 사명은 세상에 나가 평신도와 사제들을 불러 모아 신품 성사의 중요성과 영능을 알아보도록 하는 것이다. 사도들이 활동하던 시대로부터 우리는 성체 안에서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가운데에 그리스도의 현존을 드러내게 해주는 사제들과 함께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 오고 있다. 교회 역사 이래 악의 세력은 사제직을 파괴하려고 책략을 써왔다. 우리는 공산주의 국가들에서 어떻게 사제들이 성직을 박탈당하고 체포 구금되고 순교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수도 없이 듣는다. 


그리고 심지어는 이른바 그리스도교 국가들에서조차 반성직주의(反聖職主義)가 생겨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사제가 환속하거나 대중의 추문의 원인이 될 경우에 이를 만족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비아냥거리듯이 뽐내면서 “저기 또 어떤 신부가 하나 가시군 그래.”라고 말하고 의기 양양해 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사제직에 대한 공격은 우리 모든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공격이다. 이런 것을 내가 깨달았을 때에 나는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너희가 이 사제직 선물을 거절하기 시작할 때에, 너희가 사제직을 인간적인 차원으로 끌어내리려고 노력하기 시작할 때에, 너희가 사제직을 단지 하나의 직업일 따름이라고 말하기 시작할 때에 악의 세력이 너희 모두를 속이고 있다는 것을 내 백성들에게 네가 말해 주어야 한다.” 


주님은 나의 두번째 사명에 대해서는 깊은 감명을 주는 영상을 통하여 분명하게 보여주셨다. 그 영상은 마치 내가 예수 그리스도 곁에 서 있고 주께서 내게 예루살렘의 시내를 보여주시는 것과 같았다. 시내에는 주교와 사제들로 가득 차 있었다. 갑자기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셨다. 주께서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브리지야, 이 사람들이 내 백성들을 사목하고 먹이고 격려하고 이끌라고 내가 뽑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나에 대한 믿음을 잃어 가고 있다. 그들은 세상의 지혜를 찾고 있다. 그들은 내 권능을 부인하고 이 세상의 권세를 택하고 있다.” 그분은 내게 사제직이 커다란 위기를 맞이하게 될 것임을 보여주셨다. 사제들은 예수께 대한 믿음을 잃게 될 것이며 신품 성사 안에서 사제들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당신의 권능을 알아보지 못하게 될 것임도 보여주셨다. 


나는 하느님께서 내게 세상에 나아가 주교와 사제들께 다음과 같은 말로 그들을 일깨워 주라고 하시는 것으로 느꼈다. “사제직의 권능을 부인하는 것은 겸양이 아니나 내가 그들을 뽑아 세웠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겸양이다. 내가 그들을 뽑아서 세운 것은 그들이 거룩해서가 아니고, 그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잘나서도 아니요, 인간에 대한 나의 자비와 사랑과 연민 때문인 것이다. 내가 그들을 사용하여 내 현존을 드러내게 하는 것은 이 자비와 사랑과 연민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얼마나 나는 그들을 통하여 그 일을 좀더 효과적으로 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지! 가서 그들에게 나를 믿고 의지하라고 말해 다오.”


거의 네 시간 만에 경당을 떠나기 위하여 일어서면서 내 마음가짐은 달라졌다. 하느님께서는 20세기인 현재에도 사제직이라는 선물을 우리에게 주고 계시다.


사제들의 인간적인 면에 대한 내 마음가짐은 달라졌다. 나는 사제들을 위해서 더욱 기도할 필요가 있다는 것과 그분들이야말로 진정코 믿음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더욱 잘 깨닫게 되었다.




-『기적은 일어난다』(브리지 매케나, 가톨릭출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