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그리스도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기도문이기 때문에 "주님의 기도"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직접 일러 주신 기도문이고 보니, 기도문 중에서 가장 완전하고 가장 뛰어난 기도문이다.  그래서 주요 기도문 제일 첫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직접 하신 말씀으로 성경에서 뽑은 기도문이다.  어느 날 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가 예수님께 가까이 가 청하기를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 같이 저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주십시오." 하였다.  이 때 예수님께서는 기도할 줄 모르는 제자들에게 지금 우리가 바치고 있는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셨는데, 이것은 마태오 복음 6 9절에서 13절에 이르기까지 기록되어 있는 성경 말씀이다.


"주님의 기도" "사도 신경"과 더불어, 초대 교회 때부터 있었던 오래 된 기도문이며, 옛날에는 예비 신도들이 영세 직전에 "주님의 기도"를 외워 두었다가, 영세 전례 때에 비로소 하느님을 참아버지로 부르는 "주님의 기도를 공공연하게 바쳤었다.  그리고 그 때 신도들은 "주님의 기도"를 영성체 준비 기도로 바치기도 했었다.  그래서 오늘에도 미사 때 영성체하기 전에 "주님의 기도"를 사제와 함께 바친다.  "주님의 기도"는 또 어떤 경우에 (예컨대, 연도문이나 모든 성인들의 호칭 기도 끝에서와 같이)소리를 내지 않고 마음속으로 바치는 때가 있는데, 이것은 같은 정신과 같은 생각으로 같은 기도를 바치는 신도들의 일치를 의미한다.


 "주님의 기도"의 구성을 보면, 하느님을 부르는 말과 그 다음 우리가 요구하는 일곱 가지 요청으로 되어 있다. 처음 세 가지는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고, 다음 네 가지는 우리 영혼과 육신을 위한 기도이다.  이것을 각각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가 사람과 이야기할 때 먼저 상대방을 부른 다음 다른 이야기를 하듯이, 이제 하느님과 이야기하고자하니 먼저 하느님을 부르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느님을 부르되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 부르는 것은 그 때 사람들의 특별한 관습이다.  하느님은 물론 안 계신 곳 없이 곳곳에 다 계시나, 하늘을 특별히 말하는 이유는, 그때 사람들은 하느님은 하늘에만 계시는 줄로 알았고, 또 하늘은 높은 곳이니, 높은 곳에 계시는 그 분은 세상의 모든 것보다 높으신 분이라는 것을 뜻할 뿐 아니라, 하늘은 장차 우리가 하느님을 영원히 뵈올 우리의 본고향인 천국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아버지"라 하지 않고 "우리 아버지"라고 한 것은, 그 때 유대 백성들이 자기 나라의 하느님만을 찾고 있었으므로, 이것을 반대해서 하느님은 어느 특정한 나라의 하느님만이 아니시고, 모든 사람들의 공공 아버지라는 뜻에서 "우리"라는 말을 썼다.  하느님께서는 태초에 우리 인간을 만드셨으니까, 우리를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시고, 보호하여 주시는 아버지와 같으시기에. 우리는 하느님을 다른 말로 "아버지"라고 부른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우리는 높은 어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고 조심성 있게 부른다.  지위가 높은 사람이면, 이에 따라 그의 이름도 존경을 받는다.  하느님께서는 지극히 거룩하신 분이니까, 그분의 이름도 거룩하게 빛나야 함은 당연하다.  그분의 거룩한 이름을 존경하고 찬미해서, 그 이름의 거룩하심이 모든 이에게 나타나도록 기도하는 구절이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하느님의 나라"라고 하면, 우리는 세 가지 모양으로 알아 듣는다.  첫째로 성인 성녀들이 복락을 누리는 천국(天國)을 말하고, 둘째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세우신 보이는 교회를 말하며, 셋째로는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보이지 않는 우리의 착한 마음을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하느님의 나라는, 교회와 우리의 마음을 뜻한다고하겠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하느님 나라는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루가 17, 21)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잡고, 모든 이가 아버지의 뜻대로 착한 마음으로 살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다음에는 보이는 하느님의 나라, 즉 당신의 교회가 점점 자라서 하느님을 모르는 많은 이가 하느님의 나라인 교회를 알고, 뭇 백성이 하느님을 공경함으로써 하느님의 나라가 이룩되기를 기도해야 한다.


 "오시며"라는 말의 뜻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대한다."  또는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의 집으로 간다."는 뜻이다.  혹은 "어디에 이르다", "미치다"라는 뜻을 가지기도 한다.  그러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나라가 하늘로부터 이 세상에 미치도록 기도하라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먼저 하느님의 ""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겠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되시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고통을 당하셨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인간을 죄에서 살리고자 하심이 그 분의 뜻이었다.  십자가를 택하신 하느님의 뜻은 곧 "사랑"이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요구하신다.  지금 천국에서는 모든 성인 성녀들이 하느님을 사랑하고 있으므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렇게 천국에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듯이, 하느님의 나라가 이 땅에도 오시어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신다.  다시 말하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여러 가지의 죄악을 끊어 버리고 하느님을 참아버지로 공경 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니, 우리는 이것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이제는 영혼과 육신 생활에 필요한 것을 빈다.  "일용(日用)할 양식(糧食)"은 매일 우리가 쓰고 있는 식량을 말하는데, 이 말은 비단 매일 먹는 양식뿐 아니라 영혼 생명에 필요한 양식, 즉 우리 영혼에 필요한 하느님의 은혜와 영혼 생명을 길러 나가는 성체(聖體) 성사도 말한다.  이것 외에도 현세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포함한다.  현세의 모든 생활 필수품이 우리 힘으로만 마련되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특별한 은혜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일용할"ㅡ이 말씀으로 우리는 하루 먹을 양식만을 찾을 것이지 10, 20년 먹을 양식을 찾는 욕심쟁이는 되지 말고, 모든 것을 하느님께 의지하고 살 것을 가르치신다. 그러니까 영혼, 육신의 생명을 위한 모든 것을 우리가 할 수 있는 데까지 노력하면서 동시에 하느님께 기도로써 도움을 청해야 한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여기서는 우리가 범한 죄의 용서를 빈다.  하지만 우리가 하느님께로부터 죄의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다.  그것은 남이 우리에게 범죄했을 때 우리가 먼저 그를 용서해 주어야만 비로소 하느님께서도 우리를 용서 하시겠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남을 용서해 주지 않고는 아무리 하느님께 죄의 용서를 애원해 보았자 헛된 일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잘 못한 이를 용서해 준다는 조건하에서만, 하느님께서도 우리를 용서해 주시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다른 말씀을 들어 보자.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마태 6, 14-15). 얼마나 똑독하게 말씀하셨던가!  특히 다음 말씀은, 우리 형제들간에 화목하지 않고서 하느님을 공경하는 것은,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결코 받아들이시지 않겠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러하다.  "그러므로 제단에 예물을 드리려 할 때에 너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형제가 생각나거든 그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그를 찾아가 화해하고 나서 돌아와 예물을 드려라"(마태 5, 23-24).


하느님께 기도하고자 할 때, 형제들과 마음 상한 일이 생각나면, 먼저 가서 화해를 하고, 기도하란 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우리의 형제와 우리의 이웃들과 먼저 화목하지 않고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은 진정한 기도의 태도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유혹(誘惑)"이란 말은 유인(誘引)이란 말과도 같은 의미를 가지는데, 남을 꾀어서 나쁜 길로 인도한다는 말 이다.  여기의 유혹은 시련, 고통, 어려움을 다 포함한다. 이 기도문은 얼핏 보기에 하느님께서 마치 우리를 유혹하시는 분같이 생각되나, 그것이 아니다.  하느님은 결코 우리를 나쁜 것에로 이끌지 않으신다.  우리를 유혹하는 물건은 세상의 체면, 욕정으로 기울어지는 육신과 악마들이다.  이것들이 우리를 유혹할 때, 하느님께서는 다만 그것을 그냥 내 버려 두실 뿐이다.  왜 버려 두시느냐 하면, 우리가 이 유혹과 싸워서 공로(功勞)를 세울 수 있도록 하시고자 함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결코 우리가 이겨 낼 수 없는, 말하자면 우리에게 벅찬 유혹을 허락치는 않으신다. 그러므로 유혹에 떨어져 죄를 짓는 것은, 오직 우리가 그것을 물리치지 않은 탓이다.  하지만 우리가 유혹을 당할 때, 그것을 따르지 않고 물리치면 죄가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공이 된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가 도무지 죄악의 유혹조차 당하지 않도록 기도하기보다, 우리가 당하는 유혹을 물리칠 하느님의 은혜를 빈다.  즉 유혹에 떨어져 범죄하지 않고, 이것을 극복해서 공로를 세우는 힘을 주시도록 빈다.


악에서 구하소서

()은 항상 우리 언저리에 있는 모든 흉측한 죄악을 일컫는다.  불행히도 우리의 부주의와 태만으로 우리가 이런 악에 떨어졌을 때, 거기에서 건져 주실 것을 빌면서 "주님의 기도"를 끝낸다.


 

성모송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성모송(聖母頌)" "주님의 기도" 다음으로 중대하고 완전한 기도문이다.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는, 거룩하신 예수님을 낳았으니 거룩하신 어머니시다.  거룩하신 어머님께 바치는 기도문이기에 "성모송"이라 한다.

"성모송" 13세기에 벌써 모든 교우들에게 알려졌으며, 성 비오 5세 교황이 이것을 성무 일도(聖務日禱 성무일도는 사제들 또는 수도자들이 매일 바치는 기도책이다.)에 삽입하게 되자, 더욱 널리 전파되었다.  그리고 "성모송" "묵주(로사리오) 기도"에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때로는 병자와 마귀를 쫓는 데에도 바쳐지는 기도문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첫째 부분 : 시작부터 "또한 복되시도다!"까지를 말한다.  이 것은 하늘의 천사가 마리아께 축하의 인사말을 한 것과,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예수님의 어머니 되심을 알고 인사한, 두 인사의 말로써이루어지는 것이다.


인사말은 다음과 같다.  "은총을 가득히 받은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루가 1, 28).  이것은 천사의 인사 말씀이다.  다음 엘리사벳의 인사 말씀은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 (루가 1, 42)이다.  이 말은 성모님이 받을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찬사의 말씀이다.  그리하여 우리도 마리아를 극구 찬양하기 위해, 이 인사말을 성모송에 넣었다.


둘째 부분 : 그 나머지 부분이다.  이것은 마리아에게 전달을 구하기 위해 교회에서 만든 기도문인데, 16세기 중간 카니시오 성인 때 벌써 널리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은총(恩寵)"은 하느님께서 공으로 주시는 은혜인데 우리 구원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하느님의 도우심이다. 천주(天主) 성자의 어머니가 되시기로 특별히 뽑힌 여인이신지라, 하느님의 은총을 담뿍 받으셨다.  그러기에 마리아는 인류의 원조(元祖)가 저지른 "인류의 죄"에 물들지도 않았고, 또 자신이 지은 죄도 없다.  죄의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는 마리아이시다.  죄 없으신 하느님을 낳을 분이시니, 응당 어떤 죄도 없어야 함은 마땅한 일이다.


"은총이 가득하신", 이 말에서 우리는 마리아께서 인류의 죄도 없으신 특전의 특전을 받은 오직 한 사람임을 넉넉히 알 수 있다.  이 점에 있어서 마리아는, 모든 사람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모든 천사들보다 위에계신다.  그러기에 하늘의 천사가 그에 맞갖은 축하 인사를 올렸다.


기뻐하소서

 "기뻐하소서!"  함은 축하하는 예의 인사를 말한다.  "마리아님!  당신은 하느님의 은총을 가득히 받으셨으니, 당신께 축하를 드립니다."의 뜻이다.  우리는 학교에 입학하거나 졸업하게 될 때, 또는 새해를 맞이할 때도 서로 축하 인사를 주고받는다.  하물며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기로 간택되셨으니, 으레 축하를 받으셔야 마땅하지 않은가!  그래서 하늘의 천사까지 마리아에게 축하 인사를 드려 기쁨을 같이한다.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죄의 그림자도 없이 하느님의 은총으로 충만하신 마리아이시니까, 하느님과 사랑으로써 일치하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  하느님과의 일치에 어떤 장애물도 없을 뿐 아니라, 하느님을 잉태하실 마리아이시고 보니, 하느님과 한가지로 계시는 분이시다.


여인 중에 복되시며

마리아는 하느님으로부터 복을 받았다.  이와 같이 복된 속에서 하느님과 더불어 계시는 마리아는, 이 세상 어떤 여인도 받을 수 없는 최대의 특전을 받았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님이 되시므로, 세상 모든 여인 가운데 뛰어난 여인이시다.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태중(胎中)"은 뱃속이란 뜻인데, 당신의 배에서 나신 당신 아들 예수님도 역시 복을 받으셨다.  이것은 엘리사벳이 마리아에게 한 인사말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하느님을 낳은 거룩한 어머니 마리아"란 뜻이다.  마리아는 예수를 낳았으니 예수의 어머니가 되는 것이지, 어떻게 하느님의 어머니가 된단 말인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모르는 소리다.  어머니가 낳은 아들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그는 "대통령의 어머니"가 되듯이, 마리아가 낳은 예수는 하느님이시니까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물론 대통령의 어머니가 "대통령의 직"을 낳지는 않았듯이, 마리아도 "예수의 천주성"을 낳지는 않았다.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우리가 살면서 일하는 지금과, 그리고 우리가 죽을 그 때, 죄인(罪人)인 우리를 위해서 하느님께 빌어 주십시오."라는 뜻이다.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실 수 있는 분은 하느님뿐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 마리아에게 성모송을 만들어 기도를 바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가톨릭에서는 마리아에게뿐만 아니라, 하늘에 계시는 성인 성녀들께도 기도를 바친다.  그러나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빌어 주소서" 하는 말에 주의해야 한다.  마리아와 기타의 성인.성녀들은 직접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는 힘이없기 때문에, "주님의 기도"에 있어서와 같이 직접 "악에서 구하소서" 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를 대신해서 하느님께 빌어 달라고 간구할 뿐이다.  우리는 죄인이기에 하느님께 직접 구하기에는 어려움을 우리 스스로 느낀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직접 무엇을 청하기가 어려울 때는 어머니를 통해서 청하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가 청해서는 안 될 것이, 어머니가 청했기에 되는 일이 흔히 있다.  우리가 성모님께 비는 것도 이와 똑같다.

그러니 천주교회의 기도문을 자세히 살펴보라!  하느님께 대한 기도문에는 언제든지 직접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기도하지만, 마리아나 성인.성녀께 바치는 기도문에는 언제나 간접적으로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이렇게 되어 있다.  우리는 이것을 혼동하지 말고, 그 까닭을 알아야 하겠다.


 

영광송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하느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는 기도문이다.  "영광(榮光)이란 말은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예컨대 "이런 자리에 불러 주셔서 대단히 영광으로 생각합니다."라고 한다.  "영광"이란 말은 "올바로 알아준다"는 뜻이다  그이를 그이답게 알아 모실 때 "영광"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린다는 것은, 하느님의 전능과 인자와 영원성, 절대성을 그대로 알아서 높이 모신다는 뜻이 될 것이다.  그래서 기도서에 보면 "주님, 영광 받으소서."란 구절이 자주 나온다.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도문을 여기서 설명하는 작은 영광송, 미사 때 외우는 대영광송(大榮光頌) 두 가지 가 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한마디로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뜻이지만, 하느님의 삼위 일체(三位一體)를 들어 다 알아 들을 수 없는 신()의 신비를 영광으로 찬미하라는 뜻이다.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영광이 성부.성자.성령께로 돌아가되, 태초에 삼위께서 누리시던 것과 같이 지금도 그래도 영광이 있을 것이며, 또한 언제든지 마침이 없이 영원히 있어지기를 비는 기도문이다.


 

사도신경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밑줄 부분에서 고개를 깊이 숙인다.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그리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성령을 믿으며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아멘.


사도

"사도(使徒)"는 예수께서 친히 가르치신 열두 제자를 이르는 말이다.  오늘의 주교(主敎)들이 옛날 사도 무리에 속하는 분들이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초대 교회의 첫 주교들이다.


신경

우리가 믿어야 하는 신앙 고백이기도 한 것이다.  "신경(信經)"은 라틴 말로 "상징(Symbolum).표시.신분.증명서.계약서"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3세기 성 치프리아노가 처음으로 이 말을 쓰기 시작했다.  그 까닭은, 이 믿음 조항을 입으로 고백함으로 곧 천주교 신자라는 것이 밝혀지는 신분 증명서 또는 상징.표시가 되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신경이 여러 개 있었다.  그러나 현재 우리 교회에서 쓰고 있는 것은 세 가지 신경뿐이다.  그 첫째는 "사도 신경"이요, 둘째의 것은 아타나시오 성인의, 성삼 교리(聖三敎理)가 골자로 되어 있는 "성 아타나시오 신경"이며, 셋째의 것은 "니케아ㅡ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이다.

여러 개의 신경이 생기게 된 까닭은, 옛날부터 가톨릭 신앙 개조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자, 이들을 거슬러 우리의 산 신앙을 말해 주기 위함이었다.  그러니까 신경을 외우는 것은, 그리스도로부터 내려오는 가톨릭의 참 신앙을 받아들인다는 표시가 된다.


"사도 신경"에는 열두 개의 믿음 조항이 들어 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열두 사도가 하나씩 만든 것이므로 사도 신경이라 한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사도들이 예수님께 배운 것을 그리고 그들이 믿고 그들이 전해 준 교리 중에 가장 바탕이 되는 믿음 조항이 여기에 들어 있기 때문에 "사도 신경"이라 한다.  이것은 직접 예수님으로부터 내려오고 있는 교리이기 때문에, 성경과 성전(聖傳)에 그 토대를 두고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것은 "주님의 기도"와 함께, 초대 교회 때부터 있었던 기도문이며, 특히 신입 교우가 세례(洗禮)를 받을 때, 천주교의 참 신앙을 받아들인다는 표시로서, 이것을 성세 예절 중에 공식으로 바쳐 내려오고 있다.  오늘도 그러하다.  이것은 가톨릭의 믿을 교리 편의 중심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도 신경"의 내용을 믿어야 한다.  그러나 터무니없는 믿음이 아니다.  미국 뉴욕에 갔다 온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뉴욕에는 세계에서 제일 높은 102층 집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미국에 가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미국 이야기를 하는 그이가 진실한 사람이고 믿을 만한 사람이면, 비록 우리 눈으로 보지는 못했을지라도, 우리는 그의 말을 믿는다.  그렇다면 절대로 속일 수 없는 하느님의 말씀을 어떻게 믿지 못하겠는가!  우리가 사람의 말도 믿을진대, 하느님께서 가르쳐 주신 "사도 신경"의 내용을 믿지 않는다면 도리어 우스운 일이다.


교회는, 진심으로 "사도 신경"을 한 번 외우는 사람에게 5년 은사를 베풀어 준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천지(天地)"는 하늘과 땅을 의미하는 말인데, 여기서는 하늘과 땅만을 뜻하지 않고, 이 세상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의미한다.  "창조주(創造主)"란 세상 만물을 아무 것도 없는 데서 만드신 어른이란 뜻이다.


"나는 하늘과 땅, 이 세상 모든 것을 만드신 전능하신 천주 성부를 믿는다."  즉 우리는 하느님이 한 분이심을 믿고, 또한 하느님께서 아무 것도 없던 거기에서, 재료도 없이 만물을 만드신 것을 믿는다.  물론 세 위를 가지신 하느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것이나, 성부를 우리를 만드신 아버지와 같이 생각해서, 흔히 성부께서 창조 사업을 한 것으로 말한다.  집이 있으면 집을 지은 사람이 있고 그림이 있으면 그림을 그린 사람이 있듯이, 이 넓은 우주, 해와 달, 별 그리고 온갖 식물 동물, 이것들은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다.  이것을 만드신 우주의 창조주, 조물주가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믿는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외아들"은 하나밖에 없는 외동아들이란 말이다.  "예수"는 인간을 구원하시는 "세상을 구속하시는 분(救世主)" 이라는 말이다.  "그리스도"는 기름으로 거룩해진 임금 혹은 대사제(大司祭)라는 말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가진 하나밖에 없는 성부의 아들을 믿는다.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동정(童貞)"은 아이의 몸이란 뜻으로 처녀라는 말이다.  그리스도는, 천주 제삼위(第三位)이신 성령의 힘으로, 처녀인 마리아에게 잉태(孕胎)되어 사람이 되셨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하느님이시며 또한 사람이시다. 자녀의 잉태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으로만 되는 것이 자연 법칙이지만, 예수는 하느님이시니까, 사람과 달리 천주스런 방법으로, 즉 성령의 힘으로 사람이 되셨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다니, 도무지 알아듣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믿는다.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본시오 빌라도"는 그 때 그 지방 총독의 이름이다.  그가 총독의 벼슬을 하고 있을 때 예수께서 잡혀 십자 ()모양으로 된 형틀에서 죽으셨다.  그 때의 형법에는, 십자가형의 사형이 가장 중한 것이었다.  어떤 이는 이르기를, 예수는 십자가에서 완전히 죽지 않았다고 하나, 이것은 터무늬없는 소리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완전히 죽으셨고, 거룩한 시체는 땅에 묻혔었다.  이것을 믿는다.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원조(元組)들이 죄를 지은 다음부터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까지는 천당문이 닫혀 있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계명을 받들어 착하게 산 구약의 성조(聖組: 예컨대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모세...)들은, 천당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리스도께서 오시어 천당문을 열 때까지 어떤 곳에서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곳을 "저승(古聖所:고성소)이라고 한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자 그분의 육신은 땅에 묻히시고, 그분의 영혼은 저승에 가시어, 그 때까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구약의 성인들을 위로하셨다.


예수님은 죽으신 지 사흘째 되던 날, "죽은 이들 가운데서", 즉 죽은 모든 사람들 속에서 다시 살아나셨다.  금요일에 들어가신 그리스도는 금요일.토요일을 거쳐 주일 아침에 다시 살아나셨다.  이것이 예수 부활(復活)이다. 사람은 아무리 좋은 약을 가지고도 죽은 사람을 살리지 못한다.  그러나 죽어 땅에 묻힌 예수님은 다시 살아났으므로, 이것은 곧 당신은 사람이 아니요 하느님이심을 드러낸다.  그리고, 즉시 부활하시지 않은 것은, 참으로 죽으셨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도 나중에 부활될 수 있다는 보증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신 사실을 믿는다.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오른편에 앉으시며"라 함은 성부님 바른편에 높은 자리를 정해 앉으신다는 말이다.  하느님이신 성부께서는 바른편 왼편이 없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으로서도 하느님의 영광을 가득히 누림을, 그 때의 풍속대로 말했을 따름이다.  즉 제일 높은 사람의 바른편에 그 다음으로 높은 사람이 앉았었다.  "앉으시며"라 함은, 예수님께서 마치 임금이 어좌에 앉음과, 심판관이 판석에 앉음같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가지시고 천국 어좌에 앉으시어, 공심판 때 심판관이 되실 것을 뜻하기도 한다.


예수님은 부활 후 40일에 하늘에 올라가시어 성부님 바른편에 앉으셨는데, 이것을 예수 승천(昇天)이라 한다. 하늘에 오르신 것은, 첫째, 세상에서 모든 고난을 받고, 그 보답으로 하늘에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요, 둘째는, 천당에 우리 자리를 마련하시기 위함이요, 셋째는, 우리를 위해 성부께 도움을 구하시기 위해서이고, 넷째는,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시기 위함이다.


그리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예수님은 천국에서 성부의 영광을 누리시다가, 세상 마칠 때 하늘의 구름을 타고 세상 만민을 심판하러 오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로부터"라 함은 성부 바른편의 높은 어좌로부터 심판관으로 오신다는 말이다.  "산 이"라 함은 세상이 끝나는 그 때 까지 살아 있는 사람을 말하는데, 이들도 한번은 죽었다가 살아나게 마련이다.  "죽은 이"라 함은, 세상이 만들어진 이래 죽은 모든 선자, 악자를 다 말한다.  이밖에 다른 뜻으로, "산 이"라 함은 은총 지위에 있어 천국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을 뜻하고, 죽은 이라 함은 대죄(大罪)중에 있어 지옥을 차지할 사람을 말한다.

심판관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는 만인 앞에서 각자의 선행과 악행을 판단하시어, 착한 이는 천당으로, 악한 이는 지옥으로 각각 판결하실 것을 우리는 믿는다.

이것은 많은 사람 앞에서 되는 것이므로 공심판(公審判)이라 하고, 사람이 죽은 다음 하느님 앞에서 개인적으로 받는 심판을 사심판(私審判)이라 한다.


성령을 믿으며

천주 삼위(三位)의 한 분이신 성령께서 참으로 계심과, 성부 성자와 같이 하느님이심을 믿는다.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보편된 교회(敎會)"란 서양 사람이나 동양 사람이나,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믿을 수 있는 천주교회를 말한다. 천주교회는 거룩하신 하느님이 세우신 것이니까 거룩한 교회이며, 하느님은 또한 모든 사람의 아버지이시므로, 이 교회는 모든 이가 믿어야 하는 보편된 교회임을 우리는 믿는다.


"성인"이라 함은, 세상에서 하느님을 열심히 공경하고, 남에게 좋은 표양을 주어 거룩하게 산 분들이, 죽은 다음 여러 가지 기적을 통해, 그가 확실히 천국에 있다는 것이 판명된 다음, 교회에서 "성인"이라고 특별히 선언한 분을 일컫는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모든 성인은 천당, 연옥, 은총 지위에 있는 세상 사람들을 가리킨다.  "통공(通功)"은 공()을 서로 서로 통한다는 말이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이는, 공이 많은 자가 공이 적은 자를 공으로 도와 줄 수 있고, 힘이 모자라 공이 적은 자는 힘 있는 자에게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교회", "모임"은 넓은 뜻으로 천당.연옥.세상 이 세 가지 모임을 말한다.  그러니까, 천당에 있는 영혼은 불쌍한 세상 사람들을 위해 우리는 하느님께 기도한다.  이리하여 이 세 모임은 서로서로 도와 주고 있는데, 이것을 모든 성인의 통공이라 한다.  우리는 이것을 믿는다.


죄의 용서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첫째 이유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자 함이다.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죄를 용서 하실 수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 예수께서 당신 사업을 세상 마칠 때까지 맡아 보는 기관으로 교회를 세우시고, 그 교회 안에 죄를 용서하여 주는 권리를 주시지 않았다면, 예수님의 구속 사업은 헛된 일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아라.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 23) 하시면서 똑똑히 죄를 용서하는 권리를 주셨다.  이것을 모르는 이들은 흔히, 천주교회에서는 사람이 사람의 죄를 용서한다고 한다.  정말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우리는 교회가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권리로써 죄를 용서하여 줌을 믿는다.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사람이 이 세상에서 한평생 산 다음 그 육신이 죽지만, 나중에 세상이 끝나는 날, 죽은 육신이 다시 살아나 자기의 영혼과 결합한다.  이것이 육신 부활이다.  의학 박사는 죽은 사람을 살리지 못한다.  그러나 인간 생명을 만드신 그분은 없었던 생명을 만드신 분이기에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 그분은 우리 생명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육신과 영혼이 다시 결합된 사람은 이제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게 된다.  사람은 누구든지 죽기를 싫어한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죽지 않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러므로 죽지 않고 영원히 살고 싶어하는 인간의 바람은, 죽은 육신이다.  "이리하여 그들은(악인들은) 영원히 벌받는 곳으로 쫓겨날 것이며,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들어갈 것이다." (마태 25, 46) 하셨으니, 그 때 죄인은 지옥에서 영원한 벌 중에서 살 것이고, 선인은 천당에서 영원한 복락 속에서 살 게 될 것이다.  또 이르시기를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 (요한3, 16) 하셨으니, 우리는 이것을 희망으로 삼고 하느님을 공경한다.  우리가 마땅히 영원한 생명을 얻어야 할진대, 이 모든 것이 착하신 하느님의 말씀이고 보니, 굳이 믿을 따름이다.





주요 기도문 풀이박도식 신부 지음 (가톨릭 출판사)에서 옮긴 자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