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성모님 체험기

 

"어머니!"

이 얼마나 따스하고도 깊은 사랑의 호칭입니까?

그 어떤 말이 이토록 많은 사랑을 담아낼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는 당신 자녀들에게 바다요, 영원한 영혼의 휴식처입니다.

어린아이가 태어나서 처음 발음하게 되는 것이 바로 '엄마'라는 단어라고 합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도 가장 먼저 발음하신 말이 엄마라는 말이었을 것입니다.

아기는 배고프거나 춥거나 외로울 때 울면서 엄마를 불러 댑니다.

아기에게 엄마는 참으로 모든 것을 이루어 주는 해결사와도 같습니다.

우리가 힘들 때 묵주를 들고 성모님께 기도하면서 울 때!

그것은 창피한 것이나 나약한 것이 아니라, 엄마를 부르는 아기의 울음처럼 성모님과 나 자신이 바로 모자 관계, 모녀 관계라는 것을 나타낸다 하겠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바다라고 표현한 이유는 아마도 바다가 이 세상에서 가장 자신을 낮추어 모든 것을 그 안에 담고 있기 때문인 듯 합니다.

우리의 예수님 역시 신성(神性)으로는 하느님이셨지만 인성(人性)으로는 죄 이외에서는 우리와 같이 어린아이의 시절부터 당신의 삶을 시작하셨습니다.

성모님의 손에 의지해 걸음마를 배우셨을 예수님, 그리고 언어 역시 성모님의 혀를 따라 흉내내며 배우셨을 것입니다.

복음은,예수님의 공생활 전의 어린 시절의 생활에 대해 "예수는 부모님께 순종하였다." 라고 간단히 전합니다.

여기서 우리의 하느님이신 성자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합니다.

예수님은 바로 효자(孝子)이셨습니다.

예수님의 효도를 받으신 그 예수님의 어머니가 바로 성모님이십니다.

우리가 성모님을 성인 중에서 가장 으뜸 대열에 모시어 최고의 공경을 드리는 것은,

성모님이 단지 이 세상에 예수님을 낳아 주신 그 하나의 사건만을 주목해서가 결코 아닙니다.

성모님은 단지 예수님을 낳아 주신 것 뿐 아니라 참으로 성모님은 당신의 아들을 가장 깊고 넓은 사랑으로 기르시고, 예수님은 지극한 효성으로서 공경하신 효자이셨습니다.

예수님이 그 누구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다면 그것은 바로 성모님이십니다.

일찍이 그렇게 사랑 가득한 어머니, 일찍이 그렇게 효성 지극한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분의 효심은 바로 십자가상의 마지막 유언을 통해 알 수 없습니다.

그 고통의 절정 순간에 그분은,

"어머니 이 사람이 당신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바로 너의 어머니이시다." 라고 말씀하셨고, 그 후부터 제자들이 성모님을 모셨다고 합니다.

그 고통의 순간에 바로 어머니를 생각하는 그 아들의 마음!

자신은 죽어가면서도 어머니의 거처를 걱정하는 그 효심을 우리는 참으로 깊게 묵상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가장 사랑하시던 당신의 어머니를 부족한 우리에게 우리의 어머니로 주셨으며 우리를 또한 당신 어머니에게 자녀로 삼으시게 하시어 당신을 돌보던 그 사랑으로 우리를 돌보게 하셨습니다.

즉, 우리는 예수님의 유언으로 당신의 어머니를 우리의 어머니로 모시면서 동시에 당신이 하신 성모님께 대한 그 효도를 우리가 이어 나가도록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답운 효성이십니까?

우리 역시 성모님께 효도를 할 수 있게 하신 예수님께 깊이 감사드려야 하겠습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종교나 교회가 이토록 아름다운 분, 하느님의 어머니를 교회의 어머니로 모신 데가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자격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어려운 자격을 갖기 위해 미리 기술을 가르쳐 주는 학원도 없고 준비도 없는 참으로 어려운 자격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 자격은 바로 어머니로서의 자격입니다.

사실 어머니가 되는 것처럼 힘들고 또 내 자신이 어머니이기에 자녀들 때문에 지고가야할 십자가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저는 고백성사와 면담을 하면서 어머니들이 자녀들로 인해 받는 그 상처와 걱정을 많이 듣게 되며 또, 주일학교 학생들을 통해서는 자신을 위해 그렇게 종처럼 일하시고 염려하시는 어머니에게 짜증내고 거짓말을 하는 자녀인 자신들의 송구함을 들을 때면 저는 어머니들의 삶이 바로 수도자의 삶 이상의 고난과 기도와 자기를 버리는 삶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얼마 전 한 교우의 요청으로 암 말기의 젊은 대학생에게 세례를 주러 갔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예비자였습니다.

어머니가 자기 아들의 세례를 요청했고, 그 대학생의 이모와 봉사자들과 함께 간 저에게 그 대학생은 세례 받을 것을 거부했습니다.

"왜 저에게 이런 암을 허락하셨습니까? 싫습니다. 하느님이 밉습니다!"

그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럼 세 번 묻겠습니다. 형제님! 정말 세례를 거부하겠습니까? 어머니와 친척의 사랑과 정성을 보아서라도 한번 신중히 생각해 보시죠?"

그는 세 번을 연달아 믿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성모상을 치우라고 했습니다.

함께 간 봉사자들과 이모는 매우 당황하고 낙담했습니다.

세례를 준비하는 그 젊은 어머니의 얼굴 역시 사색이 되었습니다.

저 또한 이 난감함에 얼굴을 들 수 없었습니다.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었습니다.

새 신부인 저는 어떻게 말해야할지도 모르고 제 자신의 무능력이 너무나 크게 느껴졌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사제는 의연해야 하고 모든 것이 잘되는 것만 생각했던 저는 커다란 어려움과 실패감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마음을 진정하기 위해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모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를 드리는데 정말 안타까움에 그의 어머니는 울고 있었고 이모도 울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암이라는 고통으로 어머니보다 먼저 죽어야 할 저 육신이 너무나 불쌍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더 슬픈 것은 세례를 거부하는 저 영혼의 비참함과 더 더욱이 슬픈 것은 바로 사제인 저와 이모와 봉사자들의 무능력이었습니다.

기도를 하면서 눈물이 자꾸 났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참으로 제 영혼이 밝아지며 지혜가 떠올랐습니다.

이모와 어머니를 위로하면서 저는 그 떠오르는 생각을 말했습니다.

이렇게 아드님께 말씀하십시오.

“내가 너를 잉태할 때 나는 너를 선택하여 잉태하지 않았다. 너를 나에게 주신 분은 바로 하느님이시다. 내가 너를 잉태하여 열 달을 지극 정성으로 보살 펴 고통중에 기쁨으로 너를 세상에 낳았지만 너는 이제 젊은 나이에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난다. 너 역시 나를 어머니로서 선택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누군들 이 꽃다운 나이에 암으로 죽을 아들로 태어나고 싶겠느냐? 지금 주님을 원망하고 세례를 거부하기보다 네가 나의 뱃속에서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처럼 이제 하느님의 세례를 너를 낳은 이 엄마가 줄 테니 다시 태어나자. 이제는 육적인 생명의 어머니가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으로 너의 영원한 생명의 탄생을 함께 기뻐하는 오늘이 새로운 생일이 되길 이렇게 엄마는 눈물 흘리며 바란다. 네가 세례를 받고 곧 죽겠지만, 그 시간은 바로 하늘에서 다시 태어나는 준비의 시간인 영혼의 잉태 시기이다. 엄마 역시 예비자이지만 정말 열심히 살아 천국에서 보자. 지금 이 세례를 받지 않는다면, 우리의 생명은 우리의 모자 관계는 끝이 아니겠니?"

이 말을 듣고 어느새 그 어머니는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었습니다.

그 눈물을 다 닦고 그 어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부님, 오늘은 바로 우리 아이의 생일입니다. 저는 정말 열심히 기도하겠습니다.이 아이를 위해 이젠 하느님을 원망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왜 이런 암을 주셨는지? 만약 이런 십자가를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 모자가 세례를 받아 영원하신 생명의 하느님을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아들의 병동을 향해 그 어머니와 저는 용기를 내어 성모님께서 함께하심을 느끼며 갔습니다.

저는 그 골고타에서 흐트러짐 없이 아들의 십자가상 아래에서 꼿꼿이 서서 두 손 모아 기도하시는 그 성모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이 순간이야말로 성모님께서,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라고 응답하신 은총과 믿음의 순간이 아니겠습니까?

바로 이러한 순간에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의 은총이 바로 실현되고 있음을 저는 절실하게 느꼈으며, 예수님이 왜 성모님을 통해 은총을 내리시는지 진정 알게 되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가 하루는 기도를 열심히 하다가 이루어지지 않자 예수님께,

"왜 기도를 들어 주시지 않습니까?" 하고 여쭈었더니 예수님께서는,

"너는 나의 어머니께 먼저 청하였느냐?" 라고 물으시니,

"아니요." 라고 대답하자,

"먼저 나의 어머니이신 성모께 먼저 청하라." 하시어 그 다음부터는

성인께서는 청원의 기도를 먼저 성모께 했다고 합니다.

성모님은 지금도 곳곳에서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우리의 어머니이심을 저는 보았고 들었으며 믿습니다.

성모님은 모든 성인들 중에 가장 공경을 받으시는 성인으로서 성인의 전형이십니다.

성인의 거룩한 성(聖) 자를 보면 귀이(耳)자와 입구(口)자에 임금 왕王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즉, 먼저 왕처럼 잘 듣고 왕과 같이 말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의미는 루가 복음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성모님의 잉태 사건에 대한 엘리사벳의 칭송의 말 속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다니 정녕 복되십니다."

마리아는 당신의 성령으로 인한 잉태 이후에도 성전에서 아들을 찾아 헤멨고, 가나안의 혼인 잔치에서․․․․․․. 그리고 당신 아들이 미쳤다는 소문에 그를 찾아다녔으며․․․․․․.

우리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바로 전지전능하신 하느님 아들의 십자가의 수난을 함께 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생애를 신학자들은 마리아가 100퍼센트 다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성서 역시 마리아는 그러한 이해할 수 없는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마리아는 이 모든 것을 당신의 가슴속에 곰곰이 간직하시어 새겨 두었다."

마리아의 가슴은 시므온의 예언처럼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픔의 순간을 겪으셨을 것입니다.

즉, 그분은 정말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들으시고 응답하는 믿음의 모범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믿음을 갖기 위해서 우리는 잘 듣고, 곰곰이 하느님께서 당신의 권능의 역사하심을 펼치시도록 기다릴 수 있는 응답의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머니가 맛있는 음식을 하고 있는데, 기다리지 못하고 칭얼대는 어린아이의 나약한 본성이 아니라 더 성숙하게 어머니의 사랑의 음식을 기다리는, 성숙된 자녀들의 신앙 태도가 우리 신자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성모님의 그러한 믿음을 본받기 위해, 우리는 지금부터 성서 말씀을 매일 묵상하고 나의 삶의 터전인 가정과 직장, 학교에서 매 순간을 성모님께 봉헌하는 습관을 들여야 하겠습니다.

남을 판단하고 남이 보지 않는다고 해서 흉을 보려는 유혹이 일어나면, 성모송을 마음속으로 한 번 드리는 것도 좋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말씀을 곰곰이 생각하신 성모님의 생활 태도를 본받는 구체적 방법입니다.

또한, 집안이나 개인이 어려울 때만 성모님께 기도하고 의지하는 이기적인 자녀들이 아니라 정말 기쁘고 행복한 순간에 더욱 성모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기쁨의 순간에 그분께 공을 돌려 드리는 효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천상 어머니의 자녀로서 또, 우리의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을 위해 성모님께 기도를 열심히 해야 합니다.

효(孝)자를 한문으로 쓰면, 노인 부모(老)를 자녀(子)가 업은 형상입니다.

돌아가신 부모와 조상을 위해 연미사와 연도 그리고 희생과 극기를 봉헌하는 것은 커다른 영적 효도입니다. 우리는 육적인 현세적인 효도만을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사실 공자님 역시 내가 부모에게 효도하려 하면 부모는 어느새 늙어 기다려 주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엄마와 자녀들은 생명이 생겨 탯줄로 연결되어 어머니의 뱃속에서 성장합니다.

탯줄로 어머니의 영양과 공기, 그리고 사랑이 전달되어 그 바탕으로 뼈와 살과 마음이 생겨 한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묵주기도가 바로 성모님과 우리를 연결하는 탯줄임을 명심해 로사리오 기도를 많이 봉헌해야 하겠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어른이 되어 탯줄의 흔적인 배꼽이 있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에는 성모님의 은총의 샘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가족과 이웃, 자기 자신을 위해 기도할 때 그를 위해

기도하지 말고 지금 부족하고 힘든 사랑하는 그가 되도록 그와

같아지도록 기도해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기도하기 보다는 우리와 같이 되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

그분은 바로 우리셨다. 오히려 우리가 그분이 되지 못했다.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이지만 우리는 그분께 기쁨과 평화가 되지

못했다.

우리가 하느님께 진정한 자녀가 되기 위해서 성모님의 사랑과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성모님을 우리의 어머니로 맡기셨고, 우리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은 우리를 당신의 영적인 자녀로 삼아 지금도 우리가 당신 아들과 같아지도록 즉, 성화되도록 기도를 받치십시다. 그래서 성모님을 '은총의 중재자' 라고 부릅니다.

어렸을 때 성물방에 가서 어머니께 제가 이렇게 질문하였다고 합니다.

"엄마! 어느 분이 진짜 성모님이야?"

바로 여러분의 성모님은 살아계십니다.

기도하지 않는 성모상은 돌조각과 석고에 불과합니다.

우리 기도로서 살아 계신 성모상을 우리 가정의 성모님으로 정말 기도로써 모십시다.

끝으로 성 베르나르도의 시를 묵상합시다.


성모님을 따르니 실망하지 않고 성모님을 생각하니 헤매지 않네.

성모님이 붙드시니 떨어지지 않고 성모님이 감싸 주시니 두렵지 않네.

성모님이 이끌어 주시니 지치지 않고, 성모님이 도와주신 목표에 이르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