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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석(盤石) 위에서

 

형제들과 계곡으로 놀러갔다가 정말이지 큰 바위 하나를 찾았습니다. 얼마나 바위가 크던지 열 명이나 되는 형제들이 모두 둘러앉아 라면까지 끓여먹을 정도였습니다. 옆으로는 거센 계곡 물살이 요동치며 흘러갔지만 바위 위에 앉아있던 우리는 안심하며 카드놀이도 하고 팔씨름도 하고 낮잠도 자고 별짓을 다했습니다.

 

반석(盤石)이라함은 바위 중에서도 아주 넓고 평평한 큰 바위를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문학 안에서 반석은 주로 ‘든든한 보루’ ‘편안한 안식처’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구약시대 때 반석은 보호자요 피난처이신 하느님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고 신약시대로 넘어와서는 구원의 확고한 기반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반석 중의 반석, 확고부동한 반석이신 예수님께서 나약하기 이루 말할 데 없는 어부 시몬, 그래서 수시로 흔들리던 시몬에게 반석, 곧 베드로란 칭호를 부여하십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 시몬이란 인물은 참으로 나약한 존재였습니다. 부족하기가 하늘을 찔렀습니다. 틈만 나면 먼저 나서다가 호되게 예수님으로부터 혼나는 모습을 봐서 성격도 아주 급하고 다혈직적이었습니다. 대사제 종의 귀를 서슴없이 칼로 내리치는 것을 봐서 엄청나게 과격하고 폭력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지키지도 못한 빈말을 되풀이하는 것을 봐서 균형 잡히거나 신중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틈만 나면 실수와 과오를 일삼는 것을 봐서 품위와는 거리가 먼 그런 사람, 바로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런 시몬, 어떻게 보면 오늘 우리와 거의 흡사한 시몬에게 반석, 베드로라는 새로운 이름을 주시면서 당신 구원 사업의 첫째가는 협조자, 곧 수제자로 선택하십니다.

 

그러나 시몬 베드로에게는 그 숱한 결점을 모두 상쇄하고도 남을 장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스승님을 향한 강한 열정과 사랑이었습니다. 또한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할 줄 아는 단순함과 순수함이었습니다.

 

인간적 결함이 많았던 시몬 베드로라는 존재는 우리에게 참으로 큰 위로를 선물로 주고 계십니다. 우리 역시 주님께서 바라보실 때 큰 한숨이 나올 정도로 나약하고 부족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옛날 모순 덩어리 시몬을 당신 구원사업의 첫 번째 협조자로 부르셨듯이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동일한 방식으로 한없이 부족한 우리를 당신의 사도로 부르십니다.

 

구원 사업의 협조자로 불림 받은 우리는 시몬 베드로가 언제 진정한 수제자로 거듭 났던가를 기억해야겠습니다. 수제자로 선발되어 어깨가 우쭐했던 순간까지 시몬 베드로는 아직도 진정한 의미에서 수제자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활기찬 공생활을 해나가면서 보란 듯이 눈부신 기적과 치유를 계속하던 순간까지 시몬 베드로는 아직도 진정한 의미의 수제자가 아니었습니다. 능력의 예수님을 통한 세속적 야심을 마음 깊은 곳에 품고 있던 순간까지 시몬 베드로는 진정한 의미의 수제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시몬 베드로가 진정한 수제자로 재탄생한 순간은 과연 언제였을까요? 그 순간은 자신의 무력함을 온몸으로 뼈저리게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거듭 모른다고 말하며 배반하던 순간, 동녘하늘이 엷게 밝아오면서 수탉이 세상을 깨우던 그 순간, 배신에 따른 큰 부끄러움과 비참함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던 그 순간 베드로는 진정한 수제자로 거듭 태어납니다.

 

시몬 베드로가 온 몸으로 체험했던 바처럼 나 홀로는 얼마나 약한지 모르겠습니다.

나 홀로는 얼마나 비참한지 모르겠습니다.

나 홀로는 얼마나 두려운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언제나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주님의 시선에 우리의 시선을 고정시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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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aEHIgjouee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