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2일 연중 32주일

제 1 독서     지혜서 6,12-16.제 2 독서     데살1서 4,13-18.복     음     마태 25,1-13.
지난 6일 월요일부터 10일 금요일까지 올랜도에서 광주대교구 사제 회의를 했었습니다. 미주대륙에서 사목하고 있는 8명의 신부님(플로리다 4명, 볼리비아 3명, 캐나다 1명)이 모두 모여서 서로의 삶을 나누고 친교를 이루는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같은 교구 소속이지만 모두가 서로를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어서 이번 기회를 통해 서로 가깝게 되고, 더 알게 되어서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11월은 위령성월입니다. 우리는 이 시기에 묘지를 방문하고, 돌아가신 분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합니다. 동시에 우리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해 묵상하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사실이 하나 있다면 '우리는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 죽음을 맞이하는 장소와 모습을 예측할 수 없지만, 언젠가 맞이하게 될 그때를 준비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사실 우리는 죽음에 대한 걱정보다는 당장 오늘 하루 해결해야 할 문제와 살아가야 하는 일로 바쁘게 살아갑니다. 죽음에 대한 준비나 생각은 당장 해야 할 당면과제가 아니어서 항상 뒤로 미루게 됩니다. 현대는 어쩌면 인류 최초로 너무 오래, 길게 살아야 하는 문제에 직면한 세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어쩌면 죽음이 아니라, 삶입니다.
인류의 긴 역사 안에서 가장 큰 사망원인 3가지는 굶주림, 역병, 전쟁이었습니다. 그래서 홍수나 가뭄을 해결해 달라고 제물을 바쳤고, 전염병을 하느님의 벌로 여기며 용서를 청했습니다. 또 전쟁 때에는 하느님이 우리 편이 되어 승리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전에는 종교의 영역에 있던 사망원인들이 이제는 과학기술이나 정치의 영역에서 다룰 수 있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현대 우리 사회에서 병에 걸리면 기도하기보다는 병원에 가고, 굶주려서 죽는 경우는 드문 일이 되었습니다. 역사학자인 유발 하라리는 고대와 현대의 달라진 죽음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너무 많이 먹어서 죽는 사람이 못 먹어서 죽는 사람보다 많고, 자살하는 사람이 군인, 테러범, 범죄자의 손에 죽는 사람보다 많다. 21세기 초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은 가뭄, 에볼라, 알카에다의 공격으로 죽기보다 맥도날드에서 폭식으로 죽을 확률이 훨씬 높다."(p15, [호모 데우스])
2013년 구글은 캘리코(Calico)라는 자회사를 설립했는데 그 회사의 창립목표는 '죽음 해결하기'(Solve Death)입니다. 이 회사의 임원인 빌 마리스(Bill Maris)는 2015년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나에게 500살까지 사는 게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그렇다'이다 ."이 사람의 대답대로 500살까지는 아니더라도 평균 수명이 100~150살까지 연장되면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체계와 사회구조, 문화에 많은 변화가 생겨날 수 있습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은퇴하는 시기가 달라질 수 있고, 독재자들은 더 오래 왕처럼 군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차이가 수명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오래 살지 못할 것이고, 부자는 자신이 가진 것을 활용해서 더 건강하고 오래 살 수 있을 것이며, 그만큼 부의 불평등이 고착될 것입니다.
참고로 로마 시대 남성의 평균 수명은 25세, 프랑스 혁명 시절에는 34세, 19세기 말에는 45세 정도였습니다. 지구에서 살았던 인류의 대부분은 굶어 죽지 않기 위해 매일 자기 손으로 먹을 것을 장만해야 했고, 예상치 못한 질병과 부상에 시달리고, 비록 군인은 아니더라도 전쟁과 폭력의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의 삶 근처에는 항상 병과 고통과 죽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짧고 괴로운 이 세상 삶에서 꿈을 찾기보다는, 차라리 저세상에 희망을 두고 내세를 준비 하는 것이 훨씬 지혜로운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화약보다 위험한 것이 설탕과 밀가루라고 말하는 세상입니다. 우리의 조상보다 평균적으로 긴 세월을 안전하고 안락하게 살아야 하는 우리가 예수님의 오늘 복음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요?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 구절은 언제 맞이하게 될 죽음의 때, 하느님을 만나게 되는 그 날을 준비하라는 의미로 해석합니다. 하지만 현대 의학에서는 죽음의 과정이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고, 우리는 당장 죽음보다는 삶의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삶 가운데서 죽음을 활용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첫 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삶과 죽음의 기준'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의 통념상 삶과 죽음의 기준은 우리의 몸에 있습니다. 심장과 폐, 그리고 뇌가 활동하느냐에 따라 삶과 죽음을 판단합니다. 하지만 그 외에 다른 기준도 있습니다. 성서에서는 삶과 죽음의 기준을 육체에 두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둡니다. 생명의 원천이신 하느님 안에 있다면 그는 살아있는 것이지만, 그가 하느님에게서 멀어져 있다면 그는 숨을 쉬고 있어도 죽은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정의, 자유, 자비 등의 가치를 위해 헌신하느냐 또는 타협하느냐에 따라 삶과 죽음을 가르기도 합니다. 영화 미션(Mission)에서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영토 분쟁 속에서 과라니 인디언들과 함께하다가 죽음을 맞이한 예수회 선교사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은 자신의 방식대로 인디언들과 끝까지 함께 하다가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들의 죽음 앞에서 자신의 삶을 부끄러워하는 추기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살았고, 신부들은 죽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죽은 것은 나고, 산 자들은 그들입니다." 죽음에는 신체적인 죽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적이거나 신앙적인 죽음이 있고, 때때로 그 죽음이 육체적인 죽음보다 훨씬 더 어둡고 비참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죽음은, 언젠가 오게 될 숨이 멎는 순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를 스스로 가치 없게 만드는 말과 행동, 두려움과 걱정으로 헛되이 보내버린 시간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죽음이 아닐까요? 그리고 우리들은 그 어두운 그림자가 내 생명을 뒤덮지 않도록 깨어있어야 합니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은 먼 훗날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내가 매일매일 맞닥뜨리는 순간들이고, 우리는 그때마다 진정 삶을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두 번째로 죽음을 하나의 도구로 삼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이 중요한지, 뭐가 더 가치 있는 것인지 판별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 말입니다. 애플의 창업자였던 스티브 잡스는 2005년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 아니요! 라는 답이 계속 나온다면 다른 것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왜냐구요? 외부의 기대, 모든 자만심과 자부심, 수치스러움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들은 죽음 앞에서 모두 밑으로 가라앉고, 오직 정말로 중요한 것만 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삶만 아니라, 죽음까지 생각할 때 좀 더 지혜로운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삶에 대해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1년이나 10년 후가 아닌 오늘 하루에 집중하며 살고 싶습니다. 너무 진지해서 무겁지 않고, 너무 함부로 낭비하는 일도 없이, 오늘 하루를 살아 참 좋은 날이어서 죽기에도 참 좋은 매일 매일을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언젠가 올 삶의 마지막 날이, 오늘의 삶과 다를 바 없도록 하루하루 담담하고 너그러운 태도로 지내고 싶습니다. 그래서 두려움과 걱정 없이 날마다 맞이하는 것처럼, 죽음 또한 그렇게 맞이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당부대로 항상 깨어있고, 내게 허락된 그 시간을 은총으로 받아들여, 이 세상이나 저세상, 어디에서라도 하느님 안에서 충만한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