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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가을을 제일 좋아합니다. 무더위에 고생한 사람들을 시원한 바람으로 위로해 주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웬지 모를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어서 좋습니다. 또 생각하기 좋은 계절입니다. 아무 이유 없이 바바리 코트를 입고 시집 한 권 들고 낙엽 위를 바스락 소리를 내면서 거닐며 분위기를 잡고 싶은 시기입니다.  
 
또한 가을은 제게 주어진 시간의 마무리를 하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그동안의 노고에 대한 격려를 하고 지난 시간을 살아온 자기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기에 딱좋은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짧은 시기이지만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때가 가을이 아닌가 싶습니다. 춘천에 있을 땐 공지천 공원에 가서 단풍이 우거진 나무 아래서 북한강을 바라보며 짧게나마 생각에 잠기곤 했습니다. 눈도 즐겁고 마음도 여유로워서 간간히 자연을 느끼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서울에 와서는 보라매공원에서 가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춘천에서 느꼈던 그 감동까지는 아니지만, 공원 내에서 운동을 하다보면 형형색색의 나무를 보며 가을이 왔음을 더욱 잘 느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운동삼아 열심히 걸으면서 듣는 낙엽 밟는 소리와 낙엽에서 나오는 향기를 맡으면 가을이라는 계절이 제 몸으로 들어오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낙엽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가을이 되면 왜 나무들이 가지에 붙은 잎을 하나 둘 떨어트리는지에 대해서는 모두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나무도 겨울을 나기 위해서지요. 말 못 하는 나무도 먹고 살 궁리는 다 하고 있습니다. 나무도 나름대로 살아야 하기에 잎을 자신의 몸에서 분리를 시켜 땅으로 떨어트리지만, 그 낙엽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낙엽을 보며 누구는 가을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고 하지만, 어떤 사람은 길거리가 지저분해지고 걷는데 걸리적거려서 싫다고 합니다. 예전에 어떤 도시에서 매번 낙엽청소하기 힘드니 일부러 나무를 흔들어 잎을 다 떨어트렸다는 소식을 들은 적 있습니다. 그 때도 도시 미관을 위한 합리적인 방법이었다는 의견과 아무리 그래도 낙엽은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데 가만히 두어야 한다는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암튼... 나무가 잎을 떨어트리는 의도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이 이렇게 다를까요? 사람들의 시선이 다 틀렸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두 의견은 잠시 뒤로 물려두고, 나무가 낙엽을 만들어내는 이유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한다면 낙엽의 좋고 싫고를 떠나서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나무가 추운 겨울을 살기 위해 최대한 몸통에 영양분을 저장하려고 잎을 떨어트린다고 알고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땅에 떨어진 잎이 그 나무를 위해 쓰인다는 사실을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낙엽은 아주 좋은 단열재라고 합니다. 군대에서 혹한기 훈련 받을 때, 엄청 추운 겨울 밤을 밖에서 버티기 위해 낙엽을 끌어 모아 덮었던 기억이 납니다. 생각보다 냉기로부터 몸을 보호하는데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낙엽에 나무 아래로 떨어지면 그 나무의 뿌리를 덮습니다. 그리고 뿌리를 위한 단열재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낙엽을 치워서 다른 데 버릴 것이 아니라 뿌리 주변에 뿌려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도시에서는 미관 때문에 그렇게 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낙엽은 나무로부터 쓸모없이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뿌리를 위한 좋은 이불이 된다는 사실은 늘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을 바라봅시다. 내가 가지고 있는 단점과 부족함들... 그것 때문에 좌절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한없이 자신을 부족하다 생각합니다. 왜 하느님은 나에게 이런 안 좋은 것을 주셔서 내 자신을 쓸모없이 만드셨냐며 하소연 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낙엽의 소중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의 부족함도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부족함은 인간을 비참하고 보잘것없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더욱 가까이 다가서게 하는 촉진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부족하기에 채워야 하듯이, 인간적인 약점이 있기에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나약함으로 인해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성덕을 쌓을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낙엽처럼 여겨지는 나의 부족함이 오히려 나를 성장시키도록 애쓰게 하는 도구가 됩니다. 낙엽에 나무를 살리는 단열재로 거듭나듯이 말입니다.  
 
부활 찬송에 "오, 복된 탓이여! 너로써 위대한 구세주를 얻게 되었도다.”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참 아름다운 표현입닙다. 인간이 지은 죄의 탓은 아프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완벽한 구원 은총을 얻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지니신 부족함과 나약함을 사랑하십시오. 하지만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그것을 통해 하느님께 나아가셔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분 나라에 들어가게 될 때 내 자신은 완성될 것입니다. 좌절하거나 낙담하지 말고 꾸준히 앞을 향해 나아가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많은 것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 분의 거룩하신 자비를 기억하며 우리의 신앙을 충실히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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