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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1주일 복음말씀으로 선포되는 자캐오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자캐오가 예수님을 만나러 가게 된 계기가 무엇일까요? 자캐오가 예수님을 만나려는 이유에 대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지 않아서 확실히 말씀을 드리지 못합니다. 하지만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싶습니다.  
 
우선 생각해 보고 싶은 것은 ‘돈 많고 부러울 것 없는 지위에 있는 자캐오의 삶이 과연 행복했을까?’입니다. 생활은 윤택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아주 외롭고 불행했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들이 앞에서는 그의 권력 때문에 굽신거리지만 뒤돌아서면 욕을 한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도 그와 어울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민족의 반역자로 낙인찍혔을 텐데 어느 누가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겠습니까?  
 
삶은 풍족하지만, 왠지 모를 공허함을 느꼈을 그리고 누군가 진실되이 대화 나누며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을 훌륭한 멘토를 찾고 있을 자캐오를 생각해봅니다. 그때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그분을 뵙기 위해 돌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갑니다. 키가 작았던 신체적 조건 때문에 예수님을 만날 수 없었지만, 돌무화과나무라는 매개체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느님을 찾고자 하는 우리의 다짐은 쉽게 무너질 때가 많습니다. 하느님이 아닌 세상의 쾌락을 찾고자 하는 유혹, 회개 없는 죄책감 등이 하느님을 찾고자 하는 우리의 시선을 가립니다. 이럴 때 자캐오의 지혜를 배웁시다. 키가 작아서 군중에 가려 예수님을 뵙지 못하는 단점이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간 덕분에 예수님을 더욱 잘 볼 수 있는 장점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하느님을 뵙기 위한 돌무화과나무를 찾아야 합니다. 
 
돌무화과나무는 예수님과 나약한 인간을 만나게 한 소중한 매개체입니다. 돌무화과나무가 없었더라면 자캐오는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돌무화과나무는 자캐오에게 있어서 회개의 덕을 실천하도록 이끌어 준 은총의 선물이고, 자신의 부족함에도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준 은인과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에게 돌무화과나무는 기도가 될 수 있고, 선행이 될 수 있으며, 이웃을 향한 배려와 나눔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서 있는 돌무화과나무를 찾는 것은 바로 여려분들의 몫입니다. 
 
부족함이 많다고 움크리고 살기 보다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서 하느님을 뵙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직접 두 눈으로 하느님을 뵐 수 없지만, 그 분은 우리의 일상 안에서 늘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자캐오가 자신의 작은 키 때문에 자책하고 예수님을 뵙지 않았다면 그의 삶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처럼 우리도 하느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포기하고 돌아선다면 얼마나 불행할까요?  
 
내가 만드는 하느님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만드시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선행과 보속을 통해 하느님이 바라시는 '나'를 만든 자캐오의 모습처럼, 우리 역시도 하느님이 바라시는 '내 자신'이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러기 위해서 하느님을 뵙는데 도움이 되는 돌무화과나무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주님을 찾으십시오. 그분은 여러분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을 드리십시오. 그 응답을 통해 여러분은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기쁨을 이웃에게 전하며 주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을 몸소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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